남북 무협력 시대 돌파 전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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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호 31면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광명성 4호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지의 결정을 내리고, 대통령은 국회연설을 통해 남북 신뢰프로세스 정책의 대전환을 표명했다. 이로써 남북한 간에는 1990년대 이래 구축된 대화 협력 체제가 사실상 사라지는 상태가 됐다.


91년에 합의됐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6자회담을 통해 합의됐던 9·19 공동성명 등은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에 의해 무력화됐다.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됐던 6·15 공동성명과 10·4 공동성명, 그리고 박근혜 정부 들어 성사된 8·24 합의 등도 사실상 사문화됐다. 길게 보면 70년대 초반 박정희 대통령이 선의의 체제 경쟁을 제안한 이래 남북한 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적대적 협력관계가 종언을 고하고, 바야흐로 남북 간 ‘무협력 시대’가 도래했다.


국가 간 제도적 협력체제의 부재는 상호 분쟁의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만 해도 독일과 같이 싸운 우방국가의 관계였던 미국과 일본이 불과 20여 년 후에 서로 일대 결전을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군국주의를 추구한 일본 군부와 정치 지도자들의 침략적 국가전략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에 더해 미·일 양국이 합의했던 워싱턴 및 런던 해군군축 조약 등을 30년대 들어 일본이 탈퇴하면서 소위 ‘무조약시대’가 전개되고, 무제한의 군비경쟁이 시작되었던 점도 전쟁의 구조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남북 무협력 시대는 ‘해도(海圖)없는 항행’처럼 상호 분쟁의 가능성을 안은 극히 불안정한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국가안보 및 평화통일 추구의 전략을 설정해야 하는 책무를 갖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제시한 향후 대북 전략의 목표는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하여 비핵화를 성취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상황이 파국적 분쟁으로 귀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과 방법들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대북 정책의 전환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만들어내는 과제가 중요할 것 같다. 대통령이 국회연설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정책방향과 그 필요성을 설명한 것은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꼭 친북 성향을 가져서가 아니라,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북 화해협력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이 같은 입장이 대통령이 제시한 대북전략 범주에 수용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비현실적인 생각인지에 대한 설명과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 국가안보실이나 통일부가 적극 나서 새로운 대북전략의 범위와 그 세부 전략에 대한 국론 형성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동맹인 미국과 기타 주변 우방국가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겠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우리 정부가 내린 개성공단 가동중단의 결정에 상응하여 중국 및 러시아가 기존에 유지해오던 대북 경제관계를 변화시키는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대북 압박의 효과는 감소될 것이다.


새 대북정책이 북한을 자극하여 오히려 대남 군사도발의 빌미를 주어서는 곤란하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비대칭 전력’ 추구를 국방개혁의 방향으로 재검토하면서, 한·미 동맹 하에서 대북 억제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냉전기 미국이 소련에 대해 그러했듯 양자 간, 다자 간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협의를 통해 상호 오판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된다.


대북정책 전환으로 인해 세계와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 통로가 축소돼서도 안될 것이다. 그간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통해 성취한 한국의 정치경제 체제가 북한도 지향해야 할 궁극적 비전이라는 인식을 북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갖도록 해야 한다.


박영준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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