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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2016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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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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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신년 벽두부터 연일 우울한 소식이다. 중국 증시가 폭락하고 중동 정세가 심상찮다. 세계가 흔들리면 우리 경제도 충격을 받는다. 증시는 급락했고, 수출은 걱정이 앞선다. 따지고 보면 올해만 그런 건 아니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복돼 온 일상사다. 여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이 추가되면서 우리는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의 연속이다. 올해 우리가 풀어야 할 경제 숙제가 예년과 똑같은 건 그래서다. 숙제 역시 두 가지다. 저성장 국면에서 헤어날 방안,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늦출 방법이다.

 우리 경제는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참 답답할 게다. 지난해 성장률 2.7%(한국은행 추정치)에도 못 미칠 수 있다. 적어도 정부 전망치 3.1%는 힘들 것이다. 정부는 경제 운용을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가 전망치에 담겼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정부 전망치는 매년 틀렸다(표 참조). 올해 성장률 역시 정부 전망치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전망이 틀린 건 우리뿐이 아니다.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더 심하다. 2014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4.1%로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3.0%에 그쳤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 3.6%(2015년 10월 전망)도 틀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그래픽 참조). 만일 그렇다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IMF 예상대로 3.6%가 아니라 지난해(3.1%)와 같다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2.6%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도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은커녕 지난해 수준도 될까 말까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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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게다가 잠재성장률도 급락하고 있다. 지난 연말 한국은행이 추정한 잠재성장률은 3.0~3.2%다. 3년 전보다 무려 0.6~0.8%포인트 떨어졌다. 민간경제연구소는 이미 2%대 중반으로 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정치도 그렇다. OECD는 한술 더 떠 10여 년 뒤 잠재성장률을 1%로 예상했다. 34개 회원국 중 33등이라고 덧붙이면서. 일본처럼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잘해도 실제 성장률은 0%대다.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지연시켜야 하는 이유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구조개혁과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정권들 간에도 대동소이하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 이명박 정부의 ‘미래비전 2040’, 이번 정부의 ‘중장기경제발전전략’ 등이 그렇다. 문제는 실천이다. 지지부진한 4대 개혁이 단적인 증거다.

 잠재성장률 못지않게 중요한 숙제는 올해의 경제운용이다. 이건 구조개혁과 달리 의견이 갈린다. 부채 주도 성장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주장이 거세다. 건전재정과 균형재정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국가채무가 더 이상 늘어나선 안 된다는 논지다. 금리를 더 내려선 안 된다고도 한다. 가계부채 증대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자칫 외환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경제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국민의 믿음 아닐까? 또 재정은 건전해야 하고 금리는 절대로 더 이상 인하해선 안 된다는 건 도그마다. 도그마로 경제는 좋아질 수 있다는 국민의 믿음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면 도그마를 접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게다가 우리는 재정과 통화정책 모두 여유가 있다. 금리는 다른 나라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국가채무 비율 등 재정건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뿐이 아니다. 사상 최대의 무역 흑자로 올해 원고(高) 압력이 심할 거다. 수출이 감소하는 마당에 원고까지 되면 충격은 상당할 것이다. 민간투자가 부진한 상태에서 해법은 재정적자를 더 늘리는 거다. 균형재정을 성역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서 배워야 할 점도 이것이다. 지표로만 보면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꽤 있다. 그런데도 경착륙하지 않을 걸로 보는 건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 덕분이 크다. 경착륙하도록 수수방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아베노믹스가 계속될 거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믿음이 덜하다.

 지난해 정부는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겨우(?) 2.7% 성장했다. 10조원이 넘는 추경, 관제(官製)소비, 부동산 부양책 덕분이다. 후유증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세계 GDP 순위는 13위에서 11위로, 무역 순위는 7위에서 6위로 올랐다. 상대적으로 선전했다는 얘기다. 이런 노력이 올해도 계속돼야 한다. 4~5% 성장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명의(名醫) 화타가 와도 이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가 돼버렸다. 정부가 내놓은 3.1%, 잠재성장률만큼만 성장하자는 거다. 이유는? ‘되는 게 없다’는 좌절감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기업 구조조정 등 구조개혁이 가속화되면 초래될 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해 경기가 조금 살아난다고 긴축으로 선회하는 과거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정책 운용은 탄력적이어야 한다. 요즘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인기다. 그때는 그래도 활력이 있었다. 장차 ‘응답하라 2016’이 방영된다면? 오늘의 한국 경제를 자랑스러워할지, 그게 걱정이다.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