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그린몬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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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린몬스터(Green monster). 미국 프로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 구장(펜웨이파크)에 있는 왼쪽 펜스의 애칭이다. 높이 11.3m, 길이 70m의 거대한 벽 때문에 이 구장에선 좌월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다.

타구가 펜스에 맞고 튀어나오면서 방향이 꺾여 수비수들이 골탕을 먹기 일쑤다. 그런데 보스턴에는 또 다른 그린몬스터가 있다. 바로 남부 보스턴과 지역 공항을 연결하는 도심 고가도로다.

길이 4㎞의 고가도로가 완공된 것은 1959년. 시(市)는 공항으로 가는 차량이 늘면서 상습적인 교통정체가 빚어지자 7년 공사 끝에 이를 놓았다. 덕분에 한동안 교통난은 크게 완화됐다.

하지만 차량이 날로 증가하면서 고가의 교통 분산 역할은 갈수록 떨어졌고, 외관도 노후화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 됐다. 어느덧 보스턴 사람들은 이를 '녹색 괴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린몬스터를 방치할 수 없다." 시는 대책 마련에 들어가 82~90년 장기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 이후 고가도로를 없애고 지하터널을 만드는 계획이 세워졌다.

공사기간 91~2004년, 공사비 1백46억달러-. 시는 이 대(大)토목공사에 '빅딕'(Big-Di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터널은 이미 만들어졌고 몇 년 전부터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있다. 빅딕이 끝나면 보스턴은 새 모습으로 태어난다.

오는 7월 1일부터 청계천 고가도로가 철거된다. "청계천의 자연 환경과 문화를 복원하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일년 전 지방선거 후보 때 내건 공약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빅딕처럼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규모의 종합 건설 공사가 첫 삽을 뜨는 셈이다.

빅딕과 청계천 복원은 도심 미관을 살리기 위해 오래된 고가를 없앤다는 점에서는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빅딕은 10년 넘게 사전 준비한 반면 청계천 사업의 준비 기간은 일년여에 불과했다. 또 10여년 동안 차근차근 진행하는 빅딕과 달리 청계고가 철거의 공사기간은 단 2년3개월이다.

보스턴 사람들이 안다면 대역사를 초(超)스피드로 해치우겠다는 서울시의 '능력'에 놀랄 게 틀림없다. 李시장은 개발 신화의 주역이었다. 그런 그가 도심 자연.문화 복원 사업을 이끌고 있다. 복원의 신화는 탄생할 수 있을까.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