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내가 친일파가 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소한의 예의와 예우에 관해 말하겠다. 내게 있어 일본은 쭉 기분나쁜 나라였다. 그런 내 생각을 바꾸게 한 건 지난해 월드컵이었다. 2002년 6월 나는 돌연 지일파가 됐고 이듬해 2003년 6월 나는 한수 더 뜨는 친일파로 옮겨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교회에서 이상한 교육을 받아 왔다. 학교에선 북한.중국.일본을 무조건 나쁜 나라, 원수의 나라, 그래서 무찔러야 하는 나라로 배우고 한편 교회에선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배워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입장이 난처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내가 지일파로 방향 전환을 하기까지는 이런 내력이 따른다.

지난해 6월 월드컵이 한창일 때 방송일 때문에 일본 도쿄(東京)에 머물게 됐다. 그래서 나는 우리 태극전사의 8강 경기와 4강 경기를 일본에서 TV로 봤다. 8강 경기를 신주쿠(新宿)의 어느 한국 식당에서 볼 때였다.

거기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국 사람 틈에 섞인 여러 패의 일본인들이 일방적으로 우리 한국팀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일본을 원수의 나라로만 알아온 나는 좀스러움을 무릅쓰고 물었다.

너희들은 8강에서 떨어졌는데도 한국이 8강에 오른 게 기분 나쁘지 않으냐, 왜 우리 한국을 응원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자기네 나라 대신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해 싸우기 때문에 응원해야 한다고 말이다.

4강 때는 주일 한국대사관 앞마당에 가설된 전광판을 보며 응원했는데,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일본인이 한국 사람 틈에 섞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이었다. 나로선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광경이었다.

생각해 봐라. 입장을 바꿔 우리가 8강에서 떨어지고 일본이 올라갔다면 도대체 몇명의 우리 한국 사람이 일본 식당이나 주한 일본대사관 앞마당에 찾아가 "일본 이겨라"를 외쳤겠는가 말이다.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자는 게 아니다. 나 같았으면 아마도 일본을 응원하기는커녕 그들도 우리처럼 8강에서 떨어져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눈으로 일본의 아량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지일파의 일원이 됐고, 정확히 일년 후 다시 6월 나는 지일파보다 한수 더 강력한 친일파로 입장을 굳히게 된다.

거기에도 물론 사연이 있다.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방문길에 올라 그곳 의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TV 중계로 볼 때였다. 나는 많이 궁금했고, 많이 긴장됐다.

왜 저 자들이 하필 우리나라 현충일에 맞춰 우리 대통령을 초대했을까. 무슨 억하심정으로 자기네 자위법 통과 시점에 우리 대통령을 초대했을까. 그런 오만한 자들이 우리 대통령의 연설을 진지하게 들어 주기나 할까. 박수나 제대로 쳐줄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점 나무랄 데 없이 그들은 우리 대통령을 우선적으로 맞이해 주었고, 놀랍게도 연설 중간중간에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내가 왜 꼭 박수에 민감했는가는 다년간의 가수생활로 박수의 참의미를 익히 터득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 연설 도중 모두 열여덟번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고 실렸다. 그런 우리의 새 대통령이 우리 국회에서 처음으로 연설할 때는 몇번의 박수가 나왔던가. 참담하게 단 한차례의 박수도 안 나왔다.

한 사람의 대통령이 자국과 타국의 이토록 상반되는 국회에서 이토록 상반되는 예우를 받게 되다니 나는 그들의 열린 태도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말하겠다. 누구든 나의 이런 친일파 행각을 당분간은 못 막는다.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