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의 진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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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특검팀의 수사 종료로 현대 측이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뇌물로 건넸다는 1백50억원에 대한 진실 규명은 추가 수사 과제로 남겨지게 됐다.

특검팀은 23일 법원에서 관련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추가로 발부받아 추적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사채시장 등에서 워낙 복잡한 세탁 과정을 거쳐 자금 흐름을 모두 밝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상황이다.

특히 이 돈의 현금화 작업을 주도했던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씨가 지난해 1백억원 가량의 채권과 현금을 강도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1백50억원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 1백50억원의 정체를 놓고 특검팀과 정치권 등에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1. 특검팀은 뇌물에 무게=특검팀은 일단 朴씨가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에게 요구해 이 돈을 받아낸 뒤 金씨를 통해 세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에 따르면 朴씨는 남북 정상회담 예비접촉이 진행되던 2000년 4월 초 金씨를 통해 鄭회장에게 정상회담 준비 비용 명목으로 1백50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金씨의 연락을 받은 鄭회장은 朴씨에게 현대건설 비자금 조성을 통해 마련한 1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1백50장을 전달하라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 지시한 것으로 특검팀은 파악하고 있다. 李전회장은 4월 중순 朴씨를 호텔 술집에서 만나 CD 뭉치를 건넸다는 것이다.

현대 측은 朴씨에게 "금강산 카지노 및 면세점 설치 등을 허가해 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특검팀은 계좌추적을 통해 이 CD가 金씨에게 들어가 현금화된 사실을 확인하고 朴씨가 金씨에게 현금화를 의뢰한 것으로 보고 있다.

CD 전달 시점과 관련, 특검팀은 현대 관계자에게서 "4.13 총선 직후인 4월 15일로 기억한다"는 추가 진술을 확보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현대 임원진 등 관련자들의 진술이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어 朴씨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2. 이익치씨 공모극 주장=朴씨 측은 "사실 무근"이라며 李전회장과 金씨가 공모해 벌인 '사기극'이라고 주장한다.

金씨가 朴씨를 팔아 鄭회장에게 1백50억원을 요구했고, 李전회장에게서 CD 1백50장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후 金씨가 돈세탁 과정을 거친 것은 李전회장과 공모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의 근거로 朴씨는 "金씨가 나보다는 李전회장과 훨씬 가깝다"고 주장하며 "계좌추적을 해보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朴씨는 자신에게 CD를 줬다고 특검 조사에서 진술한 李전회장을 횡령.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한 상태다.

#3. 朴씨 손 안 거치고 北에?=정가에서는 1백50억원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쓰였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현대 측이 "朴씨가 남북 정상회담 준비 비용 명목으로 요구했다"고 밝힌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한 정치권 인사는 "朴씨의 손을 직접 거치지 않고 정상회담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 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朴씨가 "자신있다"고 큰 소리를 친다는 것이다. 이익치 전 회장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朴씨에게 줬다"고 주장하는 것에 朴씨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1백50억원의 진실을 알기 위해선 미국 체류 중인 金씨, 그리고 金씨와 함께 돈 세탁을 주도한 임모씨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두 사람은 지난 3월과 2월에 한국을 떠나 소재 파악이 안되고 있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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