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운지] 턱시도 입고 "도라 ~지"… 노래하는 대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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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외국 대사들이 17일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네팔 어린이 돕기 자선음악회에 섰다. 주한 외국 대사 합창단 ‘노래하는 대사들’의 회원 19명이 도라지 타령을 부르고 있다. 임현동 기자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대강당. 턱시도에 보라색 나비 넥타이를 맞춰 입은 중년 외국 남성 19명이 4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한국 민요 도라지 타령을 합창하고 있었다. 주한 외국 대사들로 구성된 합창단 '노래하는 대사들(The Singing Ambassadors)'의 회원들이다. 방글라데시.불가리아.코스타리카.뉴질랜드 등 아시아.유럽.중남미.오세아니아의 다양한 지역 출신 27개국 대사가 회원이다. 이날은 19명이 참석했다. 대사들이 정확한 발음에 수준급 노래 실력을 선보이자 관객들은 박수로 장단을 맞췄다. 관중석에선 이들이 먼저 부른 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보다 훨씬 잘 불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날 행사는 네팔 어린이 돕기 자선 음악회였다. 한국기아대책기구가 지난해 네팔 수도 카트만두 외곽에 세운 극빈층 어린이를 위한 학교 '마타티르타 비전 스쿨'의 운영 자금을 만들기 위해 마련했다. 당시 주 네팔 대사로 근무하면서 학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류시야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은 "네팔 인구의 20%인 500만 명에 이르는 천민 계층 자녀는 극심한 가난 속에 기본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난과 무지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주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노래하는 대사들'은 이날 행사를 위해 세 차례 모여 연습했다. 도라지 타령의 경우 악보에 한국 가사 발음을 영어식으로 옮겨 적은 뒤 외웠다고 한다. 시드니 바파나 쿠베카 남아공 대사는 "바쁜 시간을 쪼개 차 안.사무실.집에서 연습해 온 노래를 들려주게 돼 기쁘다"며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는 고귀한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피아노 치는 대사'로 유명한 도리안 포드 프린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도 이날 피아노 독주로 협찬했다. 프린스 대사의 연주 솜씨는 프로 수준이다. 영국 런던의 트리니티 칼리지 오브 뮤직과 프랑스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20여 년간 연주해왔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경제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통상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쇼팽 피아노 독주가 10여 분간 이어지는 동안 관객은 숨을 죽이고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음악회에는 외교통상부 음악 동호회 회원들이 참가해 클래식.재즈.블루스.팝.가요 등 폭넓은 장르의 곡을 연주했다. 오준 국제기구정책관이 드럼, 이규형 대변인이 기타와 보컬 솜씨를 뽐냈다.

'노래하는 대사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개최됐던 '2002 부산 합창 올림픽'을 계기로 탄생했다. 11월에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기념 공연도 할 계획이다. 알프레도 운고 엘살바도르 대사는 "노래하는 대사들 모임은 세계 유일의 외국 대사 합창단"이라며 "자선 행사라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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