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법원 "SM 아니면 '소녀시대'이름으로 통조림도 못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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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A시에 사는 김모(44)씨는 2007년 7월 걸그룹 소녀시대가 데뷔하자 발빠르게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수백가지 상품을 만들겠다며 상표 등록 신청을 했다. SM 엔터테인먼트가 ‘소녀시대’라는 상표를 등록 신청한 지 2주 만이었다. 김씨가 '소녀시대'라는 상표를 붙이겠다고 지정한 물품에는 코트 등 의류, 기저귀 등 생활용품에서 식용 벌레, 밴댕이, 번데기 등 생소한 식품류까지 망라돼 있었고 지정한 업종도 수십가지였다.

SM 의 ‘소녀시대’는 2008년 6월, 김씨의 ‘소녀시대’는 2009년 2월 각각 상표등록 결정을 받았다.

김씨로 인한 문제가 누적되자 SM 측은 2011년 12월 김씨의 ‘소녀시대’라는 상표등록을 무효화해달라는 특허심판을 청구했다. “상표법상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허심판원이 “김씨의 상표등록은 무효”라고 결정하자 이번엔 김씨가 특허심판원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2013년 5월 특허법원은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SM의 ‘소녀시대’는 걸그룹의 음원 및 음반 등의 상표로 인식되는 정도이지 이를 넘어 저명한 상표라고는 볼 수 없다"며 "김씨가 지정한 상품이나 업종에 '소녀시대'라는 상표를 사용한다고 해서 출처의 오인이나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는 “피고(SM 엔터테인먼트)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법원이 판단을 바꾼 근거는 데뷔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음악관련 차트를 휩쓸었던 소녀시대의 역사였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2007년 ‘소녀시대’와 ‘Kissing You’, 2008년 ‘Baby Baby’, 2009년 ‘Gee’등 소녀시대의 히트곡들을 열거했다. 그런 뒤 “음반 판매량과 방송횟수, 인기순위, 광고 등 활동이력을 보면 소녀시대는 통상의 연예활동에서 예상되는 것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인지도를 가지게 됐다”며 “김씨의 '소녀시대' 에 대한 상표 등록결정이 이뤄진 2009년 2월에는 이미 일반 공중 대부분에 널리 알려져 저명성을 획득했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이어 “‘소녀시대’가 저명한 상표에 해당하는 이상, 김씨가 지정한 상품이나 업종이 SM이 등록한 상품(음반 등) 및 업종(가수공연업 등)과 다르더라도 SM 또는 SM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의 것으로 오인·혼동케 해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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