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어머니들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6호 31면

우리 아이가 아기였을 때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차를 탈 때마다 아기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이 엄마는 꼭 안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위험한 일이다. 아기용 좌석에 앉혀 벨트를 착용시켜야 한다. 엄마가 꼭 안아도 사고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신이 안고 있으면 안전하리라 생각한다. 물리적 이론을 떠나서 엄마의 생각이 옳다. 엄마는 뱃속에 아이를 10개월 동안 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안으려는 본능이 있다. 아이가 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는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는 그 품에서 안정을 느낀다. 아버지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선 전쟁터에 간 네 아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막내를 찾아 돌려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임무를 맡은 병사들은 불만이다. 한 명을 구하려 여덞 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느냐고 자문자답하는데, 그들은 라이언 일병의 엄마를 생각한다. 아들이 다 전사한다면 엄마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아버지 마음은 말하지 않는다. 영화에 라이언 일병의 엄마는 등장하지만 아버지는 나오지 않는다.


‘병사의 아버지’란 러시아 영화를 보면, 전쟁에 나간 아들의 소식이 없자 엄마는 남편에게 아들을 찾아오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기 위해 입대해 최전선을 향한다. 마침내 아들이 교전을 벌이는 베를린의 의사당 건물에 이른다. 그의 아들은 러시아군의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아버지 품에서 숨을 거둔다.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영웅적인 추억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두 영화 모두 아들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엄마의 본능은 자식의 무조건적 안전을 추구하고, 아버지의 본능은 아들의 용기와 대견함에서 만족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반영했다. 이런 차이는 인류 진화 과정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엄마는 무조건 자녀의 안전을 바라지만, 아버지는 자식이 생존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한다.


예수님이 성인이 된 후 요셉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지 않고 마리아에 대한 구절만 나온다.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 생존해 있었지만 신학적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초기엔 예수님의 어머니도 예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예수님을 찾으러 오신 적이 있는데, 예수님이 누가 나의 모친이요 형제냐라고 하시며 거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마리아도 예수님을 이해하고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한 120명 중 마리아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리아의 놀라운 점은 아들이 숨을 거두는 장면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마리아는 자리를 지키고 끝까지 지켜봤다. 어느 엄마가 아들이 사형당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단 말인가? 마리아는 그렇게 했다. 얼마나 강인한 어머니였는지 보여준다.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예수님도 당신의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아마도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했던 천사가 들려준 말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서 힘을 얻었을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올해도 어머니들은 자녀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대신 시험 봐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어머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수험생이 강해져야 하듯 어머니도 강해져야 된다. 그 어머니에 그 자녀다. 함께 기쁨을 누리는 날이 올 것이다.


김영준 목사pastortedkim@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