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 일지로 본 남북경협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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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아산이 1989년부터의 대북(對北)사업을 기록해둔 '남북경협 사업 일지'에는 현대와 북한 측이 10년 넘게 진행해온 각종 사업의 뒷얘기가 숱하게 남겨져 있다. 현대아산은 현대그룹 대북 창구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일지는 그룹 내에서도 일부 핵심만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어서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적어놓았다"고 말했다.

◆요시다 역할 커=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한나라당 측의 폭로로 세간에 알려진 재일동포 요시다의 역할. 그는 실제로 현대의 대북 사업에 상당한 활동을 했음이 일지를 통해 확인됐다.

그는 1998년 4월 18일 현대 측 실무진의 1차 방북 때 동행했다. 그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자리에서는 금강산 관광개발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으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일정 등이 확정되는 등 큰 성과가 나왔다. 이후에도 요시다는 여러 차례 회동에 함께 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입금확인뒤 입항 허가=현대가 약속한 돈이나 현물 전달이 늦어질 때마다 북측이 으름장을 놓았던 일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98년 7월 현대 측 실무 대표단의 2차 방북 때 북한의 강종훈 아태평화위 서기장 등이 "소.옥수수 지원이 늦어져 관계기관 협조가 안된다"며 불만을 토로한 것은 그나마 점잖은 방식이었다.

관광사업 대가 지급일인 99년 1월 30일. 오후 3시가 넘도록 돈이 북측 계좌에 입금되지 않자 북한은 일방적으로 금강호 출항 금지를 통보했다. 비상이 걸린 현대는 오후 5시30분 "2월 1일까지 입금하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보냈고, 북한은 다음날 오후 2시20분 입항을 허가했다. 약속한 2천5백만달러는 2월 1일 입금됐다.

이와 관련, 전 현대그룹 관계자는 "북한이 2000년 6월 입금 지연으로 정상회담을 연기한 건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친 현대 측으로서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꾼들 휴식" 핑계=98년 12월 21일 현대는 북한에 금강산 사업의 승인을 위해 세 가지 문건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며 문건 발급이 안 되면 대가 지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자 북한은 "문건 발급은 안되며 12월 30일까지 대가 지급이 안 되면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몇 차례 신경전 끝에 30일 북한은 현대에 "일꾼들 휴식을 위해 12월 30일 자정부터 관광을 중단한다"고 최후 통첩했다.

몇 시간 뒤 현대가 입금을 약속하자 북한은 "명예회장의 신의를 믿고 일꾼들이 휴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관광 계속 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마무리됐다.

◆"쓴 맛 볼 것"=이후에도 입금이 지연될 때마다 북한은 "현대와 사업 불가. 사업이 파탄되면 짭짤하게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적혀 있다.

99년 5월 풍악호 입항 지연 사건 때는 베이징(北京)에서 현대가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와 통일부에 조언을 구했다. 안기부는 "관광객을 보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통일부는 "이번에 못 들어가면 5월 대가 지불 못한다는 입장을 전해라"는 강경 입장을 주문했다.

현대는 고민 끝에 통일부 쪽 입장을 북한에 전달해 일이 마무리됐다. 이 밖에 박지원 청와대 공보수석이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99년 1월 북한은 아무런 설명 없이 "너무 시끄럽게 온다"는 이유로 朴수석 일행의 하선 불가를 통보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전진배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현대아산의 '남북경협 사업 일지'. 재일동포 요시다가 대북 사업에 간여했고(上), 옥수수.소 지원이 늦어지자 북측이 으름장을 놓았으며(中) 대북송금이 늦어지자 북한이 일방적으로 금강호 출항을 금지했던(下) 내용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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