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항목 “여러 분야 대화하자” … 정상회담 징검다리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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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0시55분, 김관진·황병서 마무리 악수 남북이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에 합의한 25일 새벽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 집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회담장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자정을 넘어 0시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통일부]

사흘간의 남북 고위급 접촉 끝에 25일 새벽 나온 ‘공동보도문’은 대부분 남측의 요구 사항을 담고 있다. 6개 항 중 ‘대북 방송 중단’을 제외한 나머지 5개가 남측 요구 사항이었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부분으로 “당국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해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자”는 대목을 꼽는다. ‘남북당국 간 회담→남북 현안 해결→남북 정상회담→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큰 그림의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접촉에선 지뢰 도발과 대북방송 문제도 중요했지만 궁극적으로 향후 어떻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느냐에 무게가 실렸다”며 “이를 위해 당국 간 회담을 정례화·체계화시키자고 남북 모두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 간 회담의 ‘체계화·정례화’와 관련,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 ‘중심협의체’ 밑에 군사분야·사회교류 등 명확히 분야별로 나눈 회담을 정례화·체계화하자는 얘기가 고위급 접촉에서 있었다”고 전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앞으로 각종 당국 간 협의체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은 9월에 바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대 김근식(정외과) 교수는 “정례화된 당국 회담을 통해 5·24 대북제재 조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현안들이 풀리면 자연스레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며 “하반기에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올해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이번 고위급접촉에선 정상회담의 ‘정’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2시 청와대에서 6개 항의 남북 합의사항을 발표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정상회담을 논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이 될 수 있는 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에 합의한 만큼 정상회담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만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도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남북 공동보도문엔 남측이 요구한 ‘지뢰도발’ 사건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 약속 및 북측이 원한 ‘확성기 중단’이 동시에 담겼다.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문제엔 남측이 요구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란 단서조항이 붙었다. 김관진 안보실장은 이를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으로 해석했다.

 6개 항의 합의사항이 대부분 남측 요구대로 채워지면서 일각에선 이면합의는 없었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칙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이면합의는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43시간 동안 협상을 했기 때문에 (이면합의 형식을 취하진 않았더라도) 향후 주고 받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재·안효성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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