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쌍둥이 마라토너 “우리 경쟁자는 케냐 선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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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한의 쌍둥이 마라토너인 김혜경(왼쪽·동생)과 혜성 자매. 두 선수는 30일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 여자마라톤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함께 달리기’ 작전으로 메달을 노린다. [베이징=김지한 기자]
정성옥 단장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렇지만 끌어주고 밀어주는 동료가 곁에 있으면 힘이 난다. 북한엔 단순한 팀 동료를 넘어 쌍둥이 자매가 나란히 마라톤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22세 쌍둥이 자매 김혜성·혜경이다.

 둘은 3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2015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 나란히 참가한다. 2013년 모스크바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출전이다. 경험 삼아 2년 전 참가한 대회에서 동생 김혜경은 8위(2시간35분49초), 언니 김혜성은 14위(2시간38분28초)에 올랐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이변을 꿈꾸고 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여자 마라톤에서 강세를 보였다. 현재 조선육상경기협회 서기장을 맡고 있는 정성옥 북한 선수단장이 1999년 세비야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랐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함봉실이 금메달을 땄고, 2013년 홍콩 아시아선수권에선 김금옥이 우승했다. ‘체육강국 건설’을 국가적 목표로 내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축구·역도와 함께 마라톤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성·혜경 자매는 북한 여자 마라톤의 차세대 주자다. 정성옥 단장은 지난 2013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당시 두 자매에 대해 “원수님이 각별히 아끼는 귀염둥이들”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4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둘은 대덕산체육단 마라톤 감독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4세에 황해북도 금천군 청소년학교에서 육상을 시작했다. 이들은 북한 내 청소년 대회 3000·5000m에서 정상급 성적을 낸 뒤 평양시 체육단에 소속돼 18세에 마라톤으로 전향했다. 1주일에 5차례, 하루 25~30㎞를 뛰는 강행군이었지만 자매는 서로 도우며 힘든 훈련을 견뎌냈다.

 이들이 북한 여자 마라톤의 간판으로 떠오른 건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열린 만경대상 국제 마라톤대회에서였다.

 동생 김혜경이 1위, 언니 김혜성이 2위로 나란히 골인했다. 이들은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평양 김일성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환호에 답했다. 당시 김혜성은 “경기 도중에 언니가 2위로 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고 말했다. 둘은 지난해 9월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때도 나란히 참가했다. 레이스 중반까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함께 달리기’ 작전으로 완주한 끝에 동생 김혜경이 7위, 언니 혜성이 9위에 올랐다.

 북한은 쌍둥이 자매를 앞세워 16년 만에 세계선수권 우승을 노리고 있다. 지난 1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김혜경이 2시간31분46초로 1위에 올랐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김혜경이 베이징 세계선수권 여자 마라톤의 다크호스’라고 소개했다.

 24일 베이징 컨벤션센터 호텔에서 만난 북한 선수단 관계자는 “우리의 경쟁자는 여자 마라톤 강국인 러시아뿐만 아니라 케냐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라면서 “대회 전에 부상이 있었지만 둘 다 사기가 좋다. 끝나고 만나자”고 말했다. 정 단장도 “남자 마라톤에 참가한 박철이 11위에 올랐다.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여자 마라톤에선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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