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핵 폐기장 후보지 울진·영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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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방사성 폐기물(핵 폐기물)처리장 후보지인 영덕과 울진군의 민심이 여전히 들끓고 있다. 핵 폐기장 반대단체 간부들은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한 채 지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정부가 핵 폐기장 후보지로 이곳과 전북 고창, 전남 영광 등 4곳을 발표한 이후 5개월째다. 단식농성, 궐기대회, 정부와 국회 방문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영덕의 경우 최근 핵 폐기장 유치 움직임이 일면서 두 단체가 맞붙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격앙된 민심=지난 6일 영덕군 남정면. 7번 국도변엔 갖가지 격문이 붙어 있다. ‘영덕군민 똘똘 뭉쳐 핵 폐기장 음모 몰아내자’‘핵 발전소는 여의도에 핵 폐기장은 청와대에 설치하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영덕읍의 길목인 영덕대교엔 ‘영덕사수’‘핵은죽음’이란 수많은 깃발이 꽂혀 있다. 영덕군청 옆 핵 폐기장 반대대책위 사무실은 공휴일인데도 간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업자원부 측의 용역을 의뢰받은 D업체가 폐기장 건립을 위한 지질조사 신청서를 군청에 접수하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서다.

이달 초부터는 폐기장 유치 움직임이 나타나 반대대책위 측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민 이선우(49)씨가 폐기장 유치위 준비 모임을 만들어 폐기장의 안전성과 지역개발 등의 긍정적 측면을 알리는 전단을 배포하고 있다. 이씨는 “폐기장 유치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가 적지 않다”며 “주민을 상대로 서명을 받은 뒤 이를 군의회에 제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반대대책위 측은 이를 반박하는 홍보물 전단을 만들어 돌리는 맞대응에 나섰다.

반대대책위 김태식(57)홍보위원장은 “폐기장의 위험성은 누구보다 정부가 잘 알고 있다”며 “주민을 현혹하는 움직임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유치 모임 발족과 정부의 양성자가속기 시설 설치, 지역 개발 등 정부의 지원 약속이 이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도 형성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지원책에 솔깃해 하는 일부 주민도 있다는 것이다.

읍내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기본적으론 건립을 반대하지만 정부 약속이 사실이라면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다른 50대 주민은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폐기장 후보지인 남정면 우곡리. 마을 노인정 문 앞에는 매직으로 ‘폐기장 건설에 찬성하는 동민은 동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쓴 커다란 ‘주민 결의문’이 붙어 있었다. 50여가구의 동민들은 모두 반대 서명을 했다.

반대대책위 측은 “정부가 폐기물의 운반거리와 해상 운송을 위한 항만시설 등을 고려해 영덕을 적지로 보고 있는 것같다”며 “곧 3차 대규모 궐기대회를 다시 열 작정”이라고 밝혔다.

울진지역은 반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1994년부터 정부가 “울진에는 짓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힌 바 있어 그나마 위안을 얻고 있다.

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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