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서 주목못받는 한국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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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종상심사의 부조리성으로 국내 영화계가 열병을 앓고있던 12월초 런던의 국제영화제와 프랑스 낭트의 제3대륙영화제에서 어떠한 해프닝이 있었는지 영화인이나 영화 정책당국은 깊이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인이나 당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영화의 국제진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하고 때로는 그 실적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영화는 국제무대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영화정책 입안자들의 영화에 대한전문성결여와 영화인의 국제감각 결여가 그 주된 원인이다.
따라서 한국 영화는 우선 비약적인 요행보다는 점진적인 내실을 기해 서서히 일류 국제영화제에 도전해야 한다. 우선 한국 영화는 해외진출의 목적을 수상보다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사고및 생활방식과 문화양식을 이해시켜 선린관계를 도모하는데 두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군소영화제에도 적극 참여하며 프랑스의 시네마테크와 같은 국제 필름 라이브러리 상영관과 유네스코등을 활용하여야 한다.
실제 북한은 유네스코를 이용하여 미국등 서방국가에 영화를 침투시키고 있다.
물론 「정치쇼」를 위한 것이지만 북한은 이번 런던 영화제에 19명을 파견했고 제3대륙영화제에 4영을 파견했다.
제3대륙영화제에 한국은 81년 『피막』, 83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금년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출품했지만 그동안 한사람의 영화관계자도 참석 안했고, 금년들어 처음으로 영화제가 시작된 며칠후 기획을 맡은 김동진씨 혼자 참석했을뿐이다.
인도가 「사타지트·레이」와같은 거물 감독을 앞세우고 리셉션과 로비를 통해 자국영화를 옹호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경쟁부문에 오른 대부분의 국가가 심사위원및 각국 영화인을 위한 리셉션을 열었다.
모든 국제영화제가 영화 상영후 영화관계자를 위한 기자회견을 연다. 우리의 경우 많은 감독들이 작품에 비해 말의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평소 자기작품을 옹호하는 화술을 익혀야한다.
국제영화제에서 평가받기 위해 특히 제3세계 영화들은 로컬리티가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 영화나 서구적 모방작은 결코 주목을 끌지못한다. 그리고 독창적인 주제, 동시에 보편성이 있는 인류 공통적 주제가 요구된다.
이번 제3대륙영화제에는 78년 홍콩서 납치된 최은희가 감독한(영화제 당국은 실제 신상옥이 감독했다고 단정함) 『돌아오지 않은 밀사』도 비경쟁부문에 출품되었다. 이준열사의 행적을 담은 이 영화는 한민족 전체의 공감대를 지닌 역사극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역사를 왜곡한 위장된 제3세계를 대상으로한 정치영화임을 알수 있다. 사실 이 정치적 성향때문에 비경쟁 부문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같은 정치성향의 영화로해서 영화제 참석인사나 일반관객의 관심을 전혀 끌지못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취약점은 주제의 정치적 허위성 이외에 시나리오의 평면적 구성과 대사의 진부성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연극적이며 경직되어 있었고 표정은 몇몇 타이프로 획일화되어 섬세한 심리표현은 전혀 불가능했다.
세트 디자인과 분장의 디테일성 부족, 공감대를 형성 못하는 구식의 둔탁한 음악, 유연성이 결여된 편집등은 지루감을 더해 주었다. 이같은 요인으로해서 관람중 자리를 뜨는 관객이 많았다.
이에 비하여 배창호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다소 최루성 멜러 드라머 형식의 작품이지만 한 인간의 에고에 대한 냉혹한 접근이란 점에서 심사위원들에 의해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었다.
소련의 심사위원인 「오스타르·요셀랴니」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특히 이미숙과 꼬마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라며 이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처와 현대 한국인의 생활모습을 잘 이해할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 영화는 앞으로도 많은 국제영화제에 출품하게될 것이다. 따라서 영화인은 순수한뜻으로 진지하게 작품제작에 임해야하며 영화진흥 기관의 관리들은 관료적인 자세를 버리고 영화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한 토양을 조성해 주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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