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왕실 요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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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총리부 기관(技官), 궁내청 관리부 대선과(大膳課) 주사(廚司)'

6일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아키히토(明仁)일왕과의 만찬을 준비하는 일본 왕실 요리사들의 공식 명칭이다.

대선과란 왕실의 식사를 담당하는 부서다. 이곳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신분상 궁내청 소속 국가공무원이다. 대선과 직원은 50명 정도며 이 가운데 30여명이 요리사다. 담당에 따라 5개 계로 나뉜다. 제1계가 일본요리, 제2계가 서양요리, 제3계는 일본과자, 제4계는 양과자.빵, 제5계는 왕세자 식사담당이다.

메뉴는 책임요리사가 매일 겹치지 않도록 짠다고 한다. 국빈이 방문해 만찬을 할 경우는 양식이 관례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요리가 많이 나온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盧대통령의 만찬 메뉴도 예외는 아니다.

왕실의 식탁에는 최고급 재료만 사용된다. 이는 대부분 도치기현 다카네자와마치(高根澤町)에 있는 76만평 규모의 왕실전용 농장에서 조달한다. 이곳은 가축이나 야채를 모두 자연상태에서 키운다. 소.돼지.양은 대부분 방목이다. 그 중에서도 양고기는 국빈만찬에 자주 등장해 절찬을 받는다.

이를 위해 쏟는 정성도 대단하다. 예컨대 1년 전쯤 국빈의 방일 일정이 잡히면 그에 맞춰 양고기를 대접하기 위해 양의 출산을 준비한다고도 한다. 또 농약은 전혀 안 쓴다.

야채에 벌레라도 끼면 직원이 손으로 일일이 떼낸다. 요리사들은 안전과 형식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익힐 때는 확실히 가열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메뉴는 내놓지 않는다.

그뿐 아니다. 생선을 통째로 조리해 접시에 담아낼 경우 흉물스럽게 입을 쩍 벌리지 않도록 묶어둔다. 바닷가재의 촉수나 껍데기도 모두 떼낸 뒤 먹기 좋게 다듬어 나온다. 심지어 포도는 한알씩 껍질을 까고 씨까지 빼놓는다. 이에 익숙해서인지 왕세자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급식에서 귤이 나오자 어떻게 까먹는지 몰라 그대로 가져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필 현충일에 일왕과 만찬을 하느냐는 비난엔 盧대통령도 부담감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왕 정한 것이라면 맛과 모양, 그리고 안전을 보장하는 왕실요리를 맛보며 한.일 간의 흐트러진 '코드'를 맞춰보면 어떨까.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