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세상] 나도 기자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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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박물관에 있는 통일에 대한 기원을 담아 글을 적는 공간(왼쪽)과 DMZ 문자를 입체화한 예술작품.

한국전쟁 일어난 지 65년 … DMZ에서 살펴본 아픈 역사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2015년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DMZ(비무장 지대)’는 그 역사와 같이 흘러온 아픈 증거다. DMZ는 남과 북의 경계선인 38선으로부터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2㎞ 내의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그 구역 안에는 군인들도 무기를 가지고 갈 수 없다.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게 된 지 오래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DMZ에 못 들어가는 민간인들을 위해 DMZ 주변에는 그에 관한 체험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가까운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구경할 수 있기도 하다. 조금 더 이동하면 DMZ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에는 DMZ에서 살고 있는 희귀한 동식물들의 박제와 평화통일 바람개비 만들기, 6·25전쟁의 역사 등을 전시해 놓아 DMZ의 자연환경과 함께 남·북한의 아픈 역사를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전쟁 발발일을 따와서 흔히 6·25전쟁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은 1950년 새벽 4시에 북한이 공격을 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일제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광복한 후 남과 북에 미국과 소련이 각각 진주해 이념이 갈라지고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잦은 남침과 북침이 있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이후 전쟁 상황이 말해준다.

북한은 공격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한다. 유엔군이 남한을 도와 참전하지만 8월에는 낙동강 부근까지 밀려나게 된다. 국군과 유엔군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인천으로 침입해 북한의 식량과 물자의 공급을 막으려던 작전)으로 다시 서울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진격을 계속해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두만강 근처까지 장악하게 된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이 전쟁 참여를 공식적으로 결정한다.

대규모로 중공군을 투입시키고, 러시아에게 군사를 보내라 재촉한다.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서울을 내주지만 또 다시 반격에 나선다. 이후 38선을 경계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당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던 러시아는 휴전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미 남한과 북한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1953년 휴전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인질(포로)교환을 실시한다.

인질(포로)은 교환했지만 남과 북에 각각 떨어지게 된 이산가족도 많았다. 그 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 몇십 년 만에 서로 만나기도 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도 계속됐지만 아직까지 통일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탈북을 하고 있다. DMZ 전망대에서 살펴본 남한과 북한의 거리는 매우 짧았다. 마음만 먹으면 탈북을 시도할 만한 거리지만, 여러 가지 통제로 인해 제한된 정보만 알 수 있는 북한이다. 정보를 아는 소수의 계층만이 탈북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이념의 북한과 민주주의 이념의 남한은 오랫동안 하나였지만 소련과 미국 두 국가의 욕심으로 인해 2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오랫동안 지켜왔던 한 나라로 다시 만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신다인 (서울 일원초 6) 학생기자

‘~님’이라 부르고 존댓말 쓰자 친구들 사이 더 좋아졌어요

내가 다니는 도성초등학교는 반이나 학년 모두 상관없이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이름 뒤에다 ‘님’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C모 그룹도 과장이나 부장, 대리 같은 임직원을 나타내는 호칭을 버리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님’ 호칭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여 줌으로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존댓말 사용하기와 ‘님’ 호칭제도를 통해 우리 학교에는 이전에 비해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생겼다. 첫 번째로는 친구들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친구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존댓말의 어떤 점이 좋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응답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존댓말은 서로를 배려해 주고 존중해 주는 또 하나의 길인 것 같다’ ‘반말을 쓸 땐 말을 함부로 하게 되어 친구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데, 존댓말을 사용할 땐 서로 조심해서 친구가 상처를 받지 않아 좋다’라는 식의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또 ‘존댓말을 써서 볼 수 있었던 효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싸움이 줄어들었다는 점, 서로 존중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점, 상대방이 나에게 존댓말을 쓰면 서로서로 기분이 좋아 계속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는 점 등의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존댓말을 쓰면 친구 사이의 예절도 지킬 수 있고, 반말을 쓰던 내가 어느새 부모님께 존댓말을 쓰는 나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존댓말을 쓴다면 아름다운 말들로 세상을 일구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쓰며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어떨까?

양지윤(서울 도성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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