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부심 되찾고 출판은 패거리주의 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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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학의 가치’를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시장논리에 일방적으로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문화적 가치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확인할 방법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신경숙 작가의 이른바 ‘표절’ 사태를 둘러싼 논란들을 보면 상업주의, 이윤지상주의, 권력 카르텔 같은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시장논리가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에 문학, 작가, 출판사라고 해서 시장으로부터 독립해 있을 방법은 없다. 문학은 시장사회의 바깥에서 작동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학의 존재방식이 언제나, 불가피하게, 시장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시장 안에 있다. 그러나 문학은 시장 이상의 것이다. 이 ‘시장 이상의 것’이 바로 문학의 가치다.

 신경숙 사태와 관련해서 한국문학의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소리들이 제기하는 핵심적 문제의식은 ‘문학의 가치’에 대한 문학 관련 종사자들의 확인 또는 재확인의 필요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은 한국문학의 활력 회복에 필수적이다. 그 회복을 향한 첫 걸음은 작가의 자부심과 긍지가 작가의식의 핵심부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 일이다. 그 핵심부가 빠지면 작가는 비틀거린다. 작가에게 명성, 권력, 부는 기본 가치가 아니다. 작가는 그런 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영혼을 팔지 않기로 자기 자신과 약속한 사람이다. 문학에서 표절행위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자기와의 약속이라는 작가적 수련절차를 밟지 않았거나 그런 약속을 배반하는 일에 해당한다. 자기 약속에 대한 헌신이 작가의 자부심이고 긍지다. 이번 신경숙 사건은 한국문학에서 이런 약속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아픈 경험이다.

 작가를 작가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위대한 것에 대한 감각’(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용어)이다. 작가에게는 그 감각이 문학적 가치다. 그러나 문화생산 단위이면서 경제활동조직인 출판사들은 영리 추구를 외면할 수 없다. 이번에 몇몇 출판사들을 향해 문학권력, 상업주의, 폐쇄주의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데는 타당해 보이는 측면도 있고 신중해야 할 측면도 있어 보인다. 논란에 싸인 출판사들은 출판활동에 반드시 호의적이랄 수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속에서 오랜 기간 출판문화를 이끌어 온 조직들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 출판사들의 ‘문학출판’이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측면 못지 않게 그 부정적 폐해도 이번 사건을 통해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폐쇄주의, 배타주의, 부족주의적 패거리주의 같은 것이 바로 그런 폐해들인데,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런 폐해들이 비평정신의 왜곡을 초래하여 문학생태계 자체를 위협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표절 논란을 넘어 문학창작, 출판, 비평 삼자의 부정적 결합에서 발생하는 위기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다.

 이번 표절 논란을 계기로 우리는 한국문학 특히 소설문학이 안고 있는 중대한 약점을 직시하고 그 허약체질을 보강할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일반 독자는 물론 한국문학 전공자들조차도 한국소설을 “도무지 읽을 수 없다”고 고백한 지 오래다. 소설 독자는 계속 줄고 있다. 독자 감소는 단순히 문학의 쇠퇴라는 일반 현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한국소설 특유의 문제점들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소설을 통해 깊은 문제의식과 상상력의 자극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은 한국문학 종사자들이 아프게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현대 세계의 문제와 딜레마에 대한 진지한 탐구, 깊은 주제의식과 흥미진진한 서사적 구성 등은 독자들이 소설읽기에서 얻는 큰 즐거움이다. 한국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이런 즐거움의 공급에 실패하고 있다. 감상적 미문쓰기, 단편 위주의 생산방식, 허약한 문예주의, 독자들과의 연결고리 상실, 끼리끼리 추어주기 등은 한국소설의 취약성을 만들어 낸 요인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한국문학의 갱신은 어렵다. 이번 표절 논란은 우리 문학의 체질을 강화하고 건강한 문학생태계를 조성하는 아픈 계기가 되어야 한다.

도정일 문학평론가

◆도정일=1941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한국에 왔다. 경희대·하와이대에서 영문학 전공. 문학평론가. 2001년부터 범사회적인 책 읽기 운동 전개. 저서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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