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3·4급 공무원 전원과 연쇄 집단 면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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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즐겨 하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토론 상대가 향후 두달 동안 3,4급 공무원이 될 전망이다.

盧대통령은 5일 청와대로 전국 시.군.구청장들을 불러 특강을 한 뒤 오찬을 함께 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7월말까지 두달 동안 3,4급 공무원들과 연쇄적으로 집단 간담회 및 토론회를 열 방침이라고 4일 청와대 관계자가 밝혔다.

대상은 공무원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앙부처 국장급(3급) 공무원들과 전국 경찰.세무서장(4급)과 같은 일선 기관장 등이다. 이 관계자는 장.차관은 국무회의 토론을 통해 '코드'를 맞췄고, 1.2급 공무원은 임명 시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했다면서 3급 공무원들과의 직접대화는 후속조치의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盧대통령은 지난 4월 감사원 업무보고를 받던 중 "혁신의 능력은 과장급(4급)에 있다. 과장급이 국장(3급)들 정신 못 차리게 밀어붙여야 한다"면서 국.과장들의 역할을 강조한 적이 있다.

盧대통령과 3,4급 공무원들의 간담회는 미국 GE사의 잭 웰치 전 회장이 도입한 '타운 미팅(Town Meeting.다양한 부서와 직위를 가진 직원들이 자신의 이름만 공개한 채 회사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하는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시와 보고만으로 이뤄진 조직 내부의 계층구조를 깨고 토론을 통해 각종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정책 결정을 하자는 것이 요체다.

이 관계자는 "3,4급 공무원들과의 만남은 盧대통령 취임 전부터 갖고 있던 계획"이라며 "취임 6개월까지 관료조직을 안정시켜 참여정부를 안착시키고 정부를 효율적인 기업형으로 운영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취임 1백일 만에 기존의 사회 주류층은 물론 자신의 지지층과도 갈등이 생긴 盧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동력(動力)으로 관료들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과거 김대중(金大中)정부의 경우 집권 후 즉각 정부조직 개편을 추진해 대대적으로 인력을 감축했으나 盧대통령이 관료조직엔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라고 한다.

그러나 盧대통령이 과연 부처 장악에 성공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최근 각 부처로부터 업무 설명을 듣고 있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부처의 자율개혁과 업무의 과감한 지방이양을 강조하고 있지만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이양할 것이 없다'거나 오히려 '조직을 늘려야 한다'는 상반된 요구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만큼 관료조직을 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일회용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盧대통령이 전면에 등장하는 일이 잦을 경우 장관들의 입지나 재량의 폭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에선 대통령의 의욕을 총선과 결부시켜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보고 있기도 하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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