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변화」앞지른 조치|일의「대북한 제재조치해제」…한국입장과 일의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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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정부는 31일 지난해 랭군사건때 취한 대북한제재조치를 내년1월1일부터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한일양국은 그동안 제재해제시기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 외교를 폈다.
일본측은 제재조치를 취한지 만1년이 되는 11월에 해제를 해야겠다고 주장한 반면 한국측은 적어도 금년은 넘겨 내년봄쯤 해 주기를 희망했다.
결국「내년해제-조기발표」라는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상호체면은 세운 셈이다.
일본이 취했던 제재조치는 내용상으로는 별로 엄청난것이 아니었다. 일본관리의 북한방문금지·북한관리의 일본입국금지등을 내세웠으나 일-북한간에는 외교관계가 없는 만큼 그 이전에도 공무원들의 교류에는 제약이 있었다.
그런데도 한일양국이 이의 해제문제를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까닭은 해제조치의 실질내용보다 그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더컸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로선 대통령의 방일직후에 일본이 대북한교류를 재개한다면 국민앞에 체면이 서지 않을뿐더러 실제면에서 이 해제조치가 남북한관계에 하나의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는점이 크게 작용했다.
북한은 작년말, 금년초의 삼자회담제의에 이어 합영법을 제정하는등 개방정책을 표방하고 최근에는 대남수재물자 제공에다 우리의 경제회담·적십자회담제의에도 호응하고 나섰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부각시겨 한국의 우방인 미·일등에 접근하려 안간힘을 다하고있다.
우리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태도를 아직은 예의 위장평화공세가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정부는 일본이 대북한제재조치를 해제하더라도 그 이상의 선을 넘는 교류확대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양보한계선을 그어놓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우리 우방들이 북한을 상대해주지 않으면 그들도 할수없이 남북대화에 응해 올수밖에 없으리라 판단하고 일종의 대북한고립화정책을 펴왔다.
일본의 이번 해제조치는 그내용이 비록 미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이러한 대북정책과는 일치되지 않는다. 더구나 해제조치의 여파가 다른 우방에까지 확대될 소지도 배제할수없다. 최근 프랑스와 북한관계를 보더라도 벌써 그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게 현실이다.
흔히들 외교는 현실이라고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외교솜씨라도 대세를 바꾸기는 지극히 어렵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평화추구에 이니셔티브를 잡아야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이미 조심스럽게 대두하고 있다.
북한고립화=남북대화 유도라는 보수적 입장에서 북한개방유도=평화달성이라는 보다 진취적인 자세로의 발전을 신중하게 심사숙고할때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미 전두환대통령은 지난8월 기자회견에서 북한동포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기술과 물자를 제공할용의를 밝혔다. 그에따라 우리는 남북한경제교류도 제의했고 북한도 경제회담제의를 받아들였다.
남북한간에 경제교류를 위한 회담이 진행되면 우방들이 비슷한 명분으로 나서는 것을 막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소·중공등 공산권국가와한국과의 상응한 교류확대를확보한다는전제에서 이문제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태세준비가 요구된다.
여하튼 일본의 대북한해제조치로 우리외교의 북한고립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재성찰의 시기가 왔다고 봐야 할것같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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