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도 넘는 더위가 이제는 춥게 느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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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아르빌에 파견된 자이툰 사단의 장병들이 휴식 시간에 체육관에서 보디빌딩 등을 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아르빌=김민석 군사전문기자

"보고픈 아들에게.

지훈아, 건강하게 잘 지내느냐. 햇볕에 그을려 얼마나 까만 얼굴로 변해 있는지, 엄마는 혼자서 지훈이 모습을 떠올리곤 한단다. 서울에는 오랜만에 눈이 오는구나. 아침부터 내린 눈이 하얗게 쌓였단다. 한발 한발 부모의 품으로부터 멀어지는 지훈이를 보고 있노라면 철부지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느낀단다. 너무 부쩍 커버린 아들아 고맙다."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된 자이툰 사단에 근무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보내는 사연이다. 연말을 앞두고 자이툰 사단에 파병된 아들과 어머니,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오간 사무치는 그리움들이 사단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남편을 자이툰에 보낸 아내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다. 그 사연을 읽는 자이툰사단 9여단의 남편 김정제 중사 마음도 촉촉이 젖는다. 김 중사의 아내는 "당신 군복을 부여잡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향기가 남아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며 그리워했다. 그녀는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내 목숨보다 더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절절히 적었다. 11민사여단 112재건지원대대 정호용 상사의 부인은 "오늘은 또 잠 못 이루고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라고 썼다. 정 상사의 부인은"만남을 앞에 두고 설레며 어떤 음식을 해줄까, 같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답니다"고 했다.

가슴 아픈 소식도 있다. 11민사여단 112대대 김보성 대위의 누나는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보성아, 좋은 소식 전해줘야 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1일 오전 3시20분." "멀리서나마 할머니 좋은 데 가시라고 기도해라. 아빠가 마중 나와서 할머니 모시고 가겠지."

정재은 중위도 부모님께 효도의 편지를 보냈다. "파병 온 지 어느덧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모님과 헤어진 지 그만큼 오래됐습니다. 한국에도 더위와 장마, 태풍, 낙엽이 지는 가을이 다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벌써 찾아왔습니다" "이라크에 처음 왔을 때 50도가 넘는, 찌는 듯한 더위와 엄청 싸웠는데 이제는 찬 바람이 불고 춥다고 느껴지기까지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사랑하는 부모님,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주세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늘 받기만 했던 사랑을 이제 제가 돌려 드리겠습니다"고 훌쩍 커진 모습을 보였다.

아르빌=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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