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와 교통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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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4일 영동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는 2차선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무서움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사고는 관광버스가 시속 1백㎞로 내리막 커브길을 질주하다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40m가량 미끄러져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일어났다.
관광버스는 예정에 없던 곳을 들러오느라 허비한 시간을 메우러 속력을 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하찮은 동기로 시작한 과속운전이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 6명의 떼죽음이란 엄청난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승용차 쪽에 무슨 잘못이 있었다면 또 모르지만 이것은 서울에서 강릉쪽으로 정상적인 운행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참사를 만났으니 한마디로 어이없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위험한 커브길인만큼 관광버스 운전사가 속도를 줄이고 안전운행을 했더라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원인을 곰곰히 뜯어보면 운전사의 부주의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경부·경인고속도로를 제외한 나머지 2차선 고속도로가 공학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급커브길이 많고 속도제한 등 교통안내 표지판도 부실해서 사고위험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행락인파가 제일 많이 왕래하는 영동고속도로는 행락 기분에 들뜬 운전자들의 과속·추월운전으로 어느 도로보다도 사고의 위험이 높다.
중앙선 표시는 되어 있으나 단 1초라도 빨리 가려는 운전자들의 조바심으로 있으나마나 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사로 침범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우기 노선버스를 비롯한 대형차의 횡포는 대단하다.
노선버스·관광버스는 이 노선을 거의 매일처럼 다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지리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또 설령 소형차와 부딪치는 일이 일어나도 자신이 죽거나 크게 다칠 위험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번 사고도 이런 심리가 밑에 깔려 일어났다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너 드라이버 쪽에도 문제는 있다.
도로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교통수칙을 지켜 차를 몰아도 날벼락을 맞을 위험이 고속도로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아야한다.
사고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무슨 예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차를 손수 몰고 가는데는 특히 조심에 조심을 해야하고 가능하면 좀 불편해도 대형차를 타는 것이 안전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겠다.
어느 도로건 그렇지만 영동 고속도로만해도 사고위험이 높은 곳이 어디며, 실제로 사고가 많이 난 곳이 어디 어디라는 것은 당국이 잘 알 줄 믿는다.
한번 사고가 난 곳에서 두번 세번 사고가 난다는 것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다는 얘기나 같다.
사고가 많은 곳은 사고가 날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게 마련이다.
그 원인을 가려 다시는 그와 비슷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게 당국의 할일이 아니겠는가.
가령 도로에 문제가 있다면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더라도 그 결점을 개선해야 할 것이며, 표지판도 충분히 보완해서 운전자들이 안전운행을 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임시대책으로는 사고 다발 지역에 순찰차를 상주시켜 과속·추월·난폭 운행을 방지하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거듭 지적하지민 사고가 나면 그 원인을 철저히 가려 다시는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근본대책을 마련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통사고의 천국이란 오명을 벗을 날은 더욱 멀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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