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사건의 시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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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며칠동안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이른바「투서」사건은 다소 의외의 국면에서 단락을 짓는 것 같다. 투서를 한 문형태씨와 그 투서의 대상자인 정내혁씨의 심심한 「사과」, 그리고 정씨의 「개인재산 사회환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며칠동안 사회의 물의를 빚었던 이 사건은 국민에게 시준 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청렴을 보장하는 안전장치인 공직자 재산등록제가 있고, 불미스러운 축재나 축재과정은 음성적 수법의 투서형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조사 처벌이 가능한데도 우리의 정치풍토는 원인이야 어디 있든 간에 그런 정도를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투서」와 같은 형태는 원래 공명정대한 「페어플레이」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며, 음모를 통해 남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음해행위이다. 어디로 보나 그것은 악덕이고 동정을 받기 어렵다.
특히 도의와 윤리가 강조되는 정치인에게는 조선조 분쟁에서나 흥행했던 악풍은 불식되어야 마땅하다.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문명사회에서 비열한 방법의 이기주의적 사고는 목적이 아무리 정의로워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가슴을 한결 어둡게 한 것은 투서를 당한 장본인 역시「공직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의 재산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가한 부인의「계」놀이나 「부동산」재미로만은 쉽게 설명될 수 없는 규모로 생각된다.
사회의 여론이 「투서질」못지 않게 투서를 당한 쪽에도 비상한 관심을 쏟고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 공인의 축재문제와 품위에 관한 논란이 먼저인가, 아니면 그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 투서행위의 위법성여부가 먼저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공직자의 명예는 미국의 「설리번사건이」보여주듯이 공직자는 공적인물(public figure)이어서 보호한계가 자연인 보다 좁고 이 사건 후 있었던 미국대법원의 「루젠브름」사건 판결에서도 자연인도 공중이 관심을 가진 문제나 사건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위법성을 조작한다고 판이함으로써 개인의 명예보다 공익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적인 법 추세다.
미국의 판결추세가 어떠하든 이번 특정공인의 재산문제는 세인의지대한 관심사이고 투서당사자가 여당의 거물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법적 논란이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중의 관심대상인 공적인물의 명예가 우위냐, 그를 훼손한 투서행위가 처벌방아야 할 것이냐는 사법적 판단이 가릴 문제이지만 두 사람 모두 우리사회를 이끌어왔고 국민이 기대를 걸었던 두 정치인의 형태는 우리정치풍토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도 교훈이 있다면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은 단순히 사법적 차원에서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매듭을 찾게된 현실에 이르고 있다.
결국 책임은 두 사람 모두에게 되돌아갔다. 이들은 이제 석연치 않은 점을 국민 앞에 떳떳하게 해명하고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끝낸 양손을 털기보다는 이와 같은 불미한 일의 소지가 없도록 전후 좌우를 두루 살피는 성의와 신뢰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또 국민이 궁금해하고 석연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문제들을 계속 추구해 석연케 하는 노력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이 사건을 매듭짓는 최선의 방법이 「재산헌납」이었는지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 사회의 양간에 상처를 남기는 좋지 않은 선례도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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