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교과서왜곡」 기본자세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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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2년의 이른바 교과서파동을 계기로 일본정부가 약속했던 왜곡교과서 시정조치의 내용이 일본출판노조의 「검정실태조사결과」라는 형태로 그 일부가 드러났다.
당시 문제가 됐던 왜곡부분에 대해 일본정부는 즉각 시정을 거부했으나 그 대신 3년마다 실시하는 검정을 1년 앞당겨 실시, 84년에 검정을 끝내고 85년부터 시정된 교과서를 쓰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에 따른 교과서검정이 현재 마무리단계에 있다.
이번 검정을 신청한 고교사회과 교과서는 일본사 12점 (전체의 4분의1 시정), 세계사 15점(부분개정 14점, 신규1점), 현대사회 22점 (신규12점, 부분개정10점) 등 모두 47점이나 출판노조가 조사한 것은 그중 절반에 가까운 22점이다.
전부는 아니라 해도 이번 발표된 검정결과는 교과서 시정에 대한 일본정부의 자세와 성의를 가늠하는데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이번 검정에서 일본정부가 82년도 검정 때와는 달리 왜곡을 강요하는 자세를 자제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82년 검정 때는 「3·1운동」을 「폭동」으로 쓰도록 하고 「신사참배·창씨개명을 강제한 사실이 없다」고 억지를 써 말썽을 빚었던 것인데 이번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원문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있다.
그러나 당시 두드러지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을 강요함으로써 기본자세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징용에 의한 강제연행」을 「관의 알선에 의한 모집」으로 서술케 한다던가 임진왜란때 한국인희생자의 귀를 잘라간 사실을 삭제토록 한 것, 일제식민통치시대에 일본어교육·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이 민족성 부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쓰게 한 것등이 그 예다.
일제침략이나 식민통치에 의한 희생자의 수를 가능한 줄여 쓰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예다. 객관적 사실로 널리 알려진 731세균부대의 만행에 대해서도 삭제를 강요, 교과서에서 그 같은 사실이 있었던 자체를 없애버린 것도 일본정부의 기본적인 자세를 엿보게 한다.
더우기 82년의 교과서파동 자체에 대한 기술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교과서문제는 무역마찰 등과 같은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그에 대한 평가도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검정의견을 들여 구체적 기술을 삭제토록 한 것은 교과서문제를 보는 일본정부의 오만한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이번 출판노조 발표가 어디까지나 일본문부성의 「검정」자체를 문제삼는 차원에서 조사된 것이지 검정에서 체크되지 않은 교과서내용 전체의 정당성 여부에 주안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문에 왜곡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경우 검정자세가 시비의 대상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를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앞으로 우리정부나 관계전문가들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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