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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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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노이 거리에는 활력이 넘치고, 시민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볼 때 베트남은 아직 가난한 나라입니다. 흔히 우리가 부(富)의 잣대로 들이미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따져 베트남은 2272억 달러(2004년 구매력 기준)로 한국의 4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더구나 이를 인구 8300만 명으로 나눠 보면 1인당 GDP는 2700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우리보다 여유롭고, 긍정적이라고 느꼈다면 제가 잘못 본 걸까요.

외국 생활을 하거나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1인당 GDP로 보면 미국인이 베트남인보다 수십 배는 행복해야 하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각박하고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이 미국인의 삶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보다 방글라데시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경제적 풍요는 행복을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는 '경제성장의 도덕적 결과(The Moral Consequences of Economic Growth)'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벤저민 프리드먼이 쓴 책입니다. 여기서 그는 "개인의 기회 확대와 사회 발전을 위해 경제성장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경제성장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진보적인 사회정책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복감을 증진시킨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해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크기는 현재의 소득수준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기대소득의 증가 폭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베트남은 7.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카자흐스탄.중국.인도 등과 함께 세계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합니다.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에게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트남 사람에게서 느낀 여유는 여기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봅니다. 지난달 초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차별에 항거하는 무슬림 2, 3세 청년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만일 프랑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면 무슬림 청년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갔을 것이고, 차별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이미 성숙 단계에 들어선 나라에서 베트남과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선진국 사람은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요. 사회적 차별 철폐와 투명성 확대를 통해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립하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경쟁에서 지더라도 자신이 피부색이나 종교.인종.성(性).출신 지역이나 학교의 차이 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고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비록 경제성장은 더디더라도 사회적 행복감은 커지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어디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야 할까요. 유난히 갈등과 충돌이 많았던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배명복 국제담당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