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기막힌 타이밍, 심장에 박힌 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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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탕웨이싱 9단

제7보(72~88)=우하 쪽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온 백의 행마를 ‘짐도 없이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행렬’이라 했는데 그 무용함에 비하면 좌상 쪽 72부터 쭉쭉 밀어붙인 진행은 전국의 지형을 바꿀 대역사(大役事).

 실리의 적정선이라는 3선을 무작정 밀어주는 것이면 이적행위겠으나 지금은 흑의 진로를 막아 78로 차단하는 준비가 있다. 좌변 흑에 허용한 실리는 9집에 불과한데 86까지 완성된 백의 세력은 좌상 쪽에 입체화한 설원이 그럴 듯하고 좌하일대의 잠재력도 무궁하다.

 그때, 좌하귀로 87이 들이박혔다. 기막힌 타이밍. 이 한수는 ‘큰 곳보다 급한 곳’이라는 말이 금과옥조로 전해지는 이유의 적확한 설명이다. 좋은 곳을 찾는 안목 그 위에 좋은 때를 짚어내는 감각을 갖춰야 진정한 고수다. 인생도 그렇다.

 87은 과녁을 꿰뚫은 화살. 아니, 심장에 들이박힌 탄환이다. 흑이 귀를 도려내도 적당히 살려주고 선수를 뽑아 외곽을 키우면 별거 없지 않나? 88로 막은 이 모양은 그냥 잡기 어렵다. 흑이 패로 저항하는 뒷맛도 남아 께름칙하다.

 검토진은 ‘참고도’ 백1로 잡아두는 쪽이 더 깔끔하다고 한다. 물론, ‘참고도’ 백1 때 다른 변화가 있긴 하지만….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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