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그라운드 나폴레옹' 두산 내야수 손·시·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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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롯데월드에서 손시헌은 회전목마에 올라탔다. 고개를 들고 마치 나폴레옹의 야망을 가슴에 품은 듯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김성룡 기자

생글생글, 그의 웃는 얼굴은 꼭 꼬마신랑 같다. 한 개그맨 때문에 요즘은 좀 구겨졌지만(?) '옥동자'의 이미지도 있다. 그렇게 곱기 만한 그가 그라운드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표범으로 변한다. 당차고 강하다. 그렇게 신고 선수(연습생)에서 올스타, 골든글러브까지 왔다.

손시헌(두산 베어스). 프로 데뷔 3년 만에 최고유격수로 인정받은 그는 그라운드의 작은 거인이다. 모두가 자신을 내려다 보는 작은 키로 알프스를 넘어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이다.

지난주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이제까지 야구 하면서 주인공이 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주인공인 것 같다"라는 말로 모인 사람들을 모두 '찌릿~'하게 했던 주인공. 그를 자신의 얼굴처럼 밝고 활기찬 놀이공원으로 초대했다.

▶"아, 손시헌? 그 친구 야구는 꽤 하는데 키가 작아서 말이야."

모두들 그랬다. 손시헌 자신은 키가 1m70cm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뜻 보면 의문이 생긴다. 대부분 야구 관계자의 눈에도 대한민국 남성 평균키에 모자라는 그가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는 게 힘에 부쳐 보였나 보다. 그래서 모두 고개를 돌렸다. 선린정보고(현 선린인터넷고) 시절, '그놈의 키' 때문에 손시헌은 갈 곳이 없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대학 진학이 결정될 때 아무도 손시헌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때는 부모님을 원망했죠. 부모님도 키가 크지 않으니까 내가 작구나. 야구를 괜히 시작했구나. 그래도 야구 못 한다는 얘기는 듣지 않았는데 막상 아무도 불러주지 않으니까 너무 야속했어요."

그러던 그가 고교 졸업 무렵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자신을 너무 잘 아는 고교 선배 김광수 코치(현 두산 수석코치)가 끈이 됐다. 김 코치는 손시헌보다도 키가 작다. 그는 프로야구 초창기 OB 베어스 내야의 야전사령관이었다. 아직도 그의 시즌 최소실책(2개.1989년)과 63경기 연속 무실책은 2루수 부문 수비 최고기록이다. 그래서 작은 키가 야구 하는 데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김 코치는 후배 손시헌을 살갑게 지켜봤고, 당시 창단을 준비 중이던 부산 동의대에 손시헌을 추천했다. 그는 그때 동의대 김민호 창단감독(현 롯데코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야구 한다고 생각하고 저 친구를 봐라.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4년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속으로 '두고 보자'를 되뇌며 부산으로 갔다. 언뜻 한국 야구 유격수의 간판 김재박 감독(현대)이 떠오른다. 서울 대광고 졸업 때 불러주는 팀이 없어 당시 창단 팀 영남대로 가야 했던 청년 김재박의 가슴에 못을 박은 한마디도 "쓸 만은 한데 키가 작아서 말이야"였다고 하던가.

▶"내 우상 박정태, 그 선배도 키가 작았죠."

손시헌의 우상은 박정태(전 롯데)다. 90년대 '탱크'라는 별명과 함께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손시헌은 박정태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에 흠뻑 빠졌다. 손시헌은 박정태를 우상으로 삼았던 이유에 한마디 보탠다. "그 선배도 키가 작았잖아요." 박정태가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였던 이유 때문이었을까. 부산은 손시헌에게 왠지 따뜻했다. 동의대 시절, 그는 창단팀 돌풍을 일으키며 프로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하던 해, 그는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또 한번 작은 키가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한 번 시련을 이겨낸 그에게 키는 더 이상 불가능을 의미하지 못했다.

2003년. 그는 자신있게 두산의 문을 두드렸고, 테스트를 통해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첫해 가능성을 보였고 2004년엔 주전 유격수 자리를 굳히며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리고 올해, 그는 최고 유격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그를 스카우트한 두산 윤혁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학생선수들, 특히 키가 크지 않은 선수에게 누가 우상이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손시헌'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거죠. 나폴레옹이 남긴 그 말.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말이에요."

◇ 손시헌은

▶ 생년월일=1980년 10월 19일
▶ 체격=1m70cm·73㎏
▶ 가족=아버지 손태하(59), 어머니 장순덕(57)씨의 2남1녀 중막내. 미혼(애인 없음)
▶ 출신 학교=화곡초-선린중-선린정보고-동의대
▶ 주요 경력=화곡초등 때 권오준(삼성)·한상훈(한화) 등과 두산
베어스기 야구대회 우승,2004년 올스타전 추천선수,2005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
▶ 닮고 싶은 선수=박정태
▶ 올해 연봉=6000만원

이태일 기자 <pinetar@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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