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와 총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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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돈은 수중에 있으면 쓰게 마련이란 것이 나라경제에도 그대로 통한다.
흔히 「경제의 피」로 비유되는 돈이 나라 안에 너무 많이 풀려 돌아다니면 사람들의 씀씀이(소비 수요)가 급격히 헤퍼지고, 시장에 나오는 물건보다 사들여 가려는 물건이 많으니 물가가 뛰고(디맨드 풀 인플레), 수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나라살림에 구멍이 나는 등(경상수지 적자) 경제의 고혈압 증상이 나타난다.
반대로 나도는 돈이 너무 귀해도 경제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따라서 예전엔 「물 관리」가 나라경제의 대본이었듯이 요즘의 자본주의 경제에선 「돈 관리」가 경기대책·물가안정·국제수지방어 등 주요 경제정책의 대본이 된다.
이 같은 돈 관리를 위해 시중에 나도는 돈의 많고 적음을 판단할 수 있도록 고안된 눈금이 이른바 통화(M1)·총통화(M2)·총유동성(M3) 등의 통화지표다.
요즘처럼 통화당국이 돈줄을 바싹 죄어 잡거나 한햇동안 얼마만큼의 돈을 풀어야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모두 「M2 증가율 ○○%」식의 통화목표가 정해진다.
돈의 양을 가늠하는데 한가지 자(尺)를 쓰지 않고 굳이 M1, M2, M3이라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종류의 자를 쓰는 것은 시중에 나도는 돈의 성질이 경기·물가·국제수지 등의 실물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주머니 속에 넣고 쓰는 현금과 당장 쓸것을 참고 은행에 예금한 돈, 단자회사에 맡겨놓은 돈 등은 풀려있는 돈이라는 점에선 같으나 어느 쪽이 더 쉽게 소비생활에 쓰여져서 물가·경기 등에 영향을 주는가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가장 쉽게 쓰여질 수 있는 돈, 예를 들어 시중의 현금과 은행의 요구불예금(당좌예금 등)등을 합쳐 통화(M1)라하고 여기에 은행의 저축성예금(정기예금·정기적금 등)을 합쳐 총통화(M2)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축성 예금은 현금만은 못하지만 이자만 포기하면 쉽게 찾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등과 같이 오래 전부터 있어온 금융기관을 흔히 제1금융권이라 부른다.
시중에 나도는 돈은 M2에 잡히는 현금·은행예금이 전부는 아니다.
은행 이외의 제2금융권, 즉 단자·보험·투신 등이 받아들이는 예수금도 모두 돈의 한 형태다. 따라서 이들 제2금융권의 예수금까지를 모두 합친 돈의 양, 즉 총유동성(M3)이 가장 넓은 범위의 통화지표가 된다. 따라서 시중에 있는 돈은 어떤 형태든 모두 M3에 포함되게 마련이다.
돈 관리를 하는데는 이상과 같은 M1, M2, M3등의 각기 다른 통화지표를 모두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M2가 실물경제 동향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 우리 나라 경제의 「경험」이므로 M2를 가장 기본적인 통화지표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올 한햇동안 돈을 어느 정도나 풀어야할 것인가를 정할 때는 실물경제가 올 한햇동안 9%정도 성장하고 물가가 2∼3% 오를 것을 예상해 M2 증가율을 11∼12%로 잡고 통화관리를 해나간다.
그러나 M2 증가율 목표가 11∼12%선으로 잡혔다하여 한국은행이 올 한햇동안 그만큼의 돈을 새로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돈은 한국은행에서 나와 은행을 거치면서 가지를 쳐 몇 배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즉 시중에 나도는 돈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유일한 발행기관인 한국은행이 찍어낸 돈(화폐발행 액)만이 가장 엄밀한 의미의 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월말 현재의 우리 나라 화폐발행 액은 2조 6천 7억원인데도 국내은행의 총 예금은 23조 2천 5백억원, 단자 등 제2금융권의 총 예수금은 14조 4천 6백억원이나 된다.
시중에 나도는 돈의 양이 이처럼 화폐 발행액의 몇 배로 불어나는 것은 은행이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과정에서 신용창조가 되어 시중통화가 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한은이 화폐발행 액을 1만큼 늘리면 M1은 약 2배, M2는 6∼7배만큼 늘어나는 것이 상례이므로 한은은 이 같은 효과를 감안해서 돈올 찍어내고 있다.
한편 지난 3월말 현재 우리 나라의 통화량은 M1로 따져 6조 6천 40억원, M2로는 23조 1백 10억원, M3으로는 37조 6천 3백 80억원쯤 된다. 1년 전과 비교해 M1으로는 17.4%, M2로는 14%, M3로는 20.3% 만큼 각각 통화량이 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M2가 가장 중요한 통화관리 척도가 되는 것은 여전하지만 요즈음엔 제2금융권의 비중이 급속히 커지면서 M3과 M2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M3도 큰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지난 74년에는 M3중 제2금융권의 예수금이 고작 19.2%였으나 지난 3월 말에는 38.7%로 그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당국이 최근 CD(양도성 정기예금증서)를 발행한 것도 제2금융권에서 돌고있는 돈을 은행 등 제1금융권으로 끌어들인다는 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제2금융권의 비중증대에 따라 통화정책에서도 M3에 대한 고려를 많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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