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년만에 드러난 「초기청자」의 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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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바닷속 깊숙이 묻혀 있던 고려청자의 비사가 9백년만에 떠올랐다.
완도 앞바다 침몰 실물선의 청자는 지난주의 제2차 발굴 중간평가 결과 보잘 것 없는 「막그릇」이라는 1차 발굴 평가를 뒤엎고 11세기 초기 고려청자의 신비를 밝혀줄 귀중한 명품들로 밝혀졌다.
또 하나의 획기적인 수확은 한국 최고·최대의 고대 선박이 될 이들 청자를 실었던 고려시대목선의 선체 확인-.
이번 발굴에서 인양된 3점의 「청자철사문매병」과 일부 「청자접시」등은 아직도 수수께끼인 고려청자의 비약 연구에 다시없는 학술적 자료가 될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동체 양쪽 부분에 철사모란무늬, 중앙부에 철사당초문과 띠를 그린 「청자철사목단문장고」는 현재 우리나라에 몇점밖에 없는 희귀품-.
청자장고는 완전품 1점, 파손품 1점이 각각 인양됐다.
완도 앞바다 해저유물은 지금까지의 고려청자 편년사를 새롭게 겅리해야 할 일대 변혁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의 1차 발굴 평가에서는 인양 유물의 연대를 13∼14세기 고려청자 쇠퇴기의 서민 생활용품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번 발굴에서 청동국자 쇠솥 토기 등이 청자들과 함께 인양됨으로써 유물연대가11∼12세기초로 확인됐다.
김정기 발굴조사단장은 청동 국자와 수저, 토기 등이 경주 안압지나 통일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과 같은 모양이고 쇠솥도 속이 깊은 고식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인양된 청자의 상한년대는 11세기까지 충분히 올라갈 수 있고 지금까지 흔히 완도앞바다 청자류를 취색의 전성기(12세기)를 지난 「쇠퇴기 청자」로만 보아온 편년사를 「초기청자」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뚱이에 치마주름 문양을 새겨넣은 「청자물병」 2점은 처음 발굴된 청자문양.
완도 앞바다 인양 청자들의 빛깔은 갈색·노랑·흑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생산지는 강진일대의 관·민요에서 구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2차발굴(3월16일∼5월13일)에서 지난주까지 건져올린 청자는 모두 2만3백여점-.
지난해 1차발굴 유물 1천5백점을 더하면 지금까지의 총인양유물은 2만1천8백여점에 이른다. 완도 앞바다 해저유물은 4만여점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속으로 들어갈수록 유약 상태가 좋고 질이 우수한 명품이 발굴, 인양되고 있다.
유물선체는 12조각의 선편을 이미 건져 올렸고 T자형의 개펄 위 노출부분을 확인했다. 정확한 선체의 전모 파악은 오는 22일 만조때 수중촬영을 실시, 확인할 예정이다.
현재 잠수사들의 육감 접촉을 통해 파악된 선체 크기는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한 중국 원대 무역선의 절반 정도.
선체는 유물을 모두 건져 올린 후 분해, 인양해 복원한다.
복원되는 완도앞바다 유물선은 목포에 건립될 국립해양박물관에 신안보물선과 함께 전시될 계획이다.

<완도=이 윤기자>

<사진=양원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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