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마저 잃게 한 "지독한 음악적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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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음반수집벽을 가진 사람에게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람이오, 첼로주자로서 전세계에서최고의 실력자로 알려진 사람이 중앙일보사 초청으로 12일밤 서울에 나타났다. 「로스트로포비치」가 그 사람이다.
그가 첼로를 들고있을때 하느님은 웃고, 첼로를 연주할 때 하느님은 운다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앞에 그가 나타났을때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대면하게되는 지독한 음악적 진실앞에서 나는 웃을 자격도 울 자격도 상실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핑 돌다 사라지는 눈물은 감상주의자의 눈안에서 생기는 일이다. 감정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야 하는 것이 장기로 되어 있던 바로크시대의 음악관은 순간적인 눈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 바로크시대가 끝날 무렵부터의 음악가치관은 찰나적으로 스쳐가는 문물만큼 진실된 것은 없다고 보고 비록 덧없기는 하지만 찰나적 진실의 소중성을 깊이 인정하기 시작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들으면서 심미적 진실이 인간에게는 역시 필요하구나 하는생각을 나는 순간적으로 가졌다. 이러한 생각의 강도가 진했기 때문에 감상주의자의 입장까지 이해해 주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음질은 아무리 파고들어도 끝이 닿지 않는 깊이와 폭을 가지고 있었다.
첼로소리가 사람의 목소리같이 들린다는 착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가 담고 있는 음악의 그릇은 천년의 경험으로 그 형상을 굳힌 듯 하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음악적 주신의 춤, 그것이었다.
서로 같지 않은 음높이와 서로 호흡이 다른 음길이들은 이주신의 지시를 순식간에 직행한다. 모든 음들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무절제하게 흩어지는듯 하다가는 주신이 마련하는 음악적 자석에 의해서 교묘히 제자리로 찾아들면서 절묘한 통일성을 이룬다.
주신을 다스리고 있는「로스트로포비치」는 그의 음악적 통치력을「브람스」「바하」「슈만」「브리튼」의 음악세계에서 거침없이 발휘한다. 천상의 어휘들을 지상에서 들을수 있게 하는 기적같은 기회를 마련하는 그는 한마디로 귀중한 인간이다.
4월의 서울을, 음악을 통한 인문애로 덮으려는「로스트로포비치」와 무관한 삶을 영위하는 음악회장밖의 서울시민을 생각하며 나는 시·공간적 위치에 따라 인간의 경험세계가 이렇게 달리 형성될수 있을까 싶어 오히려 씁쓸한 입맛으로 세종문화회관 주변을 떠나고 말았다. 이강숙<서울대교수·음악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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