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평양까지|최은희·신상옥은 이렿게 납북됐다|<프라마호텔 1216호>《1》북괴 하수인 이상희 여인에 끌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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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따르릉.
전화벨이 정적을 깨뜨렸다.
『여보세요』
『아, 최여사세요. 저 이두형입니다. 오셨단 말씀 듣고 전화드렸습니다』
『아이구 이감독, 그 새 안녕하셨어요. 사업도 잘 되시구요.』
전화를 받는 최은희의 목소리는 감기 기운이 있는듯 약간 코먹은 소리였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언재쯤 돌아가시게 됩니까. 김효천감독이 가시기전에 저녁이나 한번 모셨으면 좋겠다는데요.』
『20일 귀국할 예정이예요. 오늘 저넉은 정창화감독과 약속을했고 내일이나 모레쯤은 괜찮을것 같은데….』
『좋습니다. 그럼 내일저녁 9시 프라마호텔에서 하는게 어떨까요.』

<「양귀비」에 출연 교섭>
『좋아요.』
『그럼 내일 저녁에 다시 전화를 드리고 호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1978년 1윌14일 하오4시30분, 홍콩 프라마 호텔 1612호실.
최은희는 자유 세계에서의 마지막 통화를 끝내고 있었다. 물론 본인 자신이나 전화를 걸었던 이두형감독 이나 그것이 마지막 통화인줄을 알수없었던 운명의 순간이었다.
홍콩 김정영업공사 (영화사) 사장 시조흠씨로부터 제작준비중인 영화 『양귀비』의 주연을 맡아달라는 초청을받고 최은희가 홍콩에 도착한것은 그보다 3일전인 11일.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미모」 였던 여배우를 옭아넣는 마수에 쉰두살의 흘러간 여배우는 그만 걸려들고 만 것이다.
「52살의 양귀비」 그것은 객관적으로 허영일수 밖에 없었지만 무대에서 살다 무대에서 죽기를 바라는 배우의 꺼질수없는 정열일수도 있었다.
전화를 끊은 최은희는 잠시 방안을 서성였다.
이상희여인(58)이 오기로 한 6시까지는 아직 1시간30분의 시간이 있었다. 오전10시 전화를 걸어와 저녁을 약속했던 홍콩체류 영화감독 정창화씨가 오기로한 7시30분까지는 3시간가량 시간이 있었다.
샤워나 할까.

<워낙 미인인데 뭐…>
몸을 일으키는 순간 똑똑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문을 열자 이상희여인이 성장을 한 모습으로 활짝 미소를 띠고 서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밖에 나왔던김에 조금 빨리 왔어요. 실은 우리 남편이 한시라도 빨리 최은희씨를 보고싶어해요. 요앞 유람선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가시죠.』
이여인은 부산을 떨며 최은희에게 빨리 나갈것을 독촉했다.
전날 홍콩 전영공사 사무실서 만난 이여인은 『양귀비』 영화를 실제로 제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두번째 남편인 마카오의 억만장자라고 말하고 남편이 최은희를 한번 만나본 뒤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6시로 약속을 했는데 이여인이 그보다 앞당겨 나타난 것.
『아직 준비도 못했는데 .』
『괜찮아요.워낙 미인인데 안꾸민다고 어디가요. 자 빨리하고 가요.』
최은희가 이여인 따라 호텔을 나선것은 하오5시.
둘은 택시를 타고 선창으로 갔다.
이여인은 「와라와라」 라고 부르는 모터보트에 최은희를 옮겨 태웠다. 이여인의 남편이 기다린다는 유람선을 향해 모터보트는 바다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유람선은 어디 있어요』
『한 10분 가면돼요』
이여인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때였다.

<투박한 이북 사투리>
최은희가 탄 모터보트 뒤를 또 한 척의 모터보트가 바짝 따라 붙었다.
배에는 건장한 대여섯명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 갑자기 최은희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잠깐만요. 왠지 몸이 좀 불편 한데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분은 내일 뵈면 안될까요.』
그러나 이여인은 훗훗 뜻모를 웃음을 터뜨렸다.
『얌전히 있어요. 최은희씨 답지 않게 서둘지말고….
『뭐요? 』
불안을 느낀 최은희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때까지 말없이 모터보트만 운전하던 사내가 벌떡 일어서며 한국말로 고함을 질렀다.
『꼼짝말고 있어. 얌전하지 않으면 바닷속에 처넣고 말갔어』
투박한 이북 사투리.
『아니 뭐라구.』 기급을 해 벌떡 일어났던 최은희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듯 맥없이 쓰러져 흐느끼기 시작했다.
10분후 최은희를 태운 와라와라호와 뒤따르던 모터보트는 구용 반도 뒤쪽 앞바다 야마티 투묘소 (배 정박지) 의 시커먼 배앞에 다가붙었다.
능라도-.
배의 앞머리엔 붉은 뱀의 혓바닥같은 배이름이 시선을 끌었다.
13일 야마티에 닻을 내린 능라도호는 다음다응날인 15일 새벽 긴 뱃고동을 울리며 안개자욱한 홍콩만을 빠져나가 선수를 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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