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생산에 주먹구구판매로 농가빚더미|"시름나무"로 변한 제주감귤나무|농비는 늘고 값은 뒷걸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2그루만 심으면 대학생자녀 1명의 학비부담을 충당한다해서 「대학나무」라고까지 각광을 받았던 감귤나무가 지금은 처치곤란의 시름덩어리로 변했다.
한때는 제주도농촌을 전국제1위의 고소득부락으로까지 밀어 올렸던 감귤-.
그러나 황금작물로 마냥 부러움을 샀던 감귤재배는 관계당국의 무계획한 재배권장에 따른 과잉생산, 주먹구구식의 판매대책 등으로 재배농가를 빚더미에 올라서게 만든것이다.

<식품회사구입도 줄어>
감귤재배가 농가의 골칫거리로 등장하기 시작한것은 판매대책이 마련되지 않은채 재배면적이 급격히 늘어난 70년대 중반부터.
70년초까지만해도 제주의 감귤재배면적은 5천ha를 넘지 못했으나 수요가 늘어 시장의 물량이 달리자 늘어나기 시작했다.
74년도 9천2백23ha에 3만6천18t의 감귤을 생산했으나 ▲77년에는 재배면적이 1만1천7백10ha(11만5천5백t) ▲80년 1만4천94ha(18만7천8백70t) ▲83년1만6천9백75ha(34만t)로 급증했다.
지난10년간 감귤의 재배면적은 1.7배, 물량은 11배가 늘어난것이다. 그러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도 재배권장에 앞장섰던 도나 농협·감귤협동조합등은 체계적인 판매대책을 세우지 못했고 홍수출하도 조절하지못해 감귤값이 폭락, 대부분 농민들은 융자받은 1백여만원의 영농비를 갚을 길이 없게됐다.
더욱 제주도에 설치된 해태·롯데·대한종합식품등은 82년에는 4만4천1백90t을 구매했으나 83년에는 3만3천5백t으로 양을 대폭 줄였고 대신 외국산 오린지원액(kg당 1천9백원)이 국산원액의 2분의1 수준이라는 이유로 외국산 오린지원액을 대량 수입해 감귤소비를 떨어 뜨렸다.

<1만5천t 썩어나가>
농약·비료·노임등 영농비는 지난10년전보다 30∼70% 올랐으나 감귤값은 10년전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10년전인 지난 74년부터의 감귤값을 보면 3.75kg당 ▲74년 1천1백58원 ▲77년 1천49원 ▲80년 9백85원 ▲82년 1천1백70원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83년도에는 값이 폭락, 7백원이하로 떨어졌다. 이때문에 값이 오르는 2, 3윌중에 출하하려고 저장해두었던 감귤이 제대로 팔려나가지 못해 창고에서 썩어나가고 있다. 예년의 경우는 이 시기에 3.75kg당 1천5백∼2천원에 팔렸으나 지금은 7백원이하로 떨어져도 농민들은 제대로 팔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도에 따르면 제주도내 저장감귤은 5만t이상으로 이 가운데 2만t이 팔리고 1만5천t은 썩은것으로 조사됐다. 농민들은 실제로 썩은양은 이보다 훨씬 많은 3만여t으로 추산하고있다.
북제주군조천면조천리 김모씨(42)는 『감귤을 재배한지 10년이 넘지만 팔지못해 썩어버린 적은 처음』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제주시삼도동 김모씨(46)는 『관계당국이 황금작물이라며 재배를 권장해놓고 판매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않아 10년전보다 값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다』고 불평했다.
이때문에 일부재배농민들은 감귤나무를 베어내고 바나나등 수익성 과수를 심고있다.
서귀포시천지동639에서 9천5백평방m의 감귤과원을 운영하는 양창두씨(46)는 지난 20일 2천3백평방m의 15년생 감귤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바나나재배를 서두르고 있다. 양씨는 나머지 감귤나무도 연차적으로 모두 베어 다른 작목으로 교체할 계획을 세워놓고있다.
또 서귀포시강정동4554 고남준씨(39)도 82년에 9천3백75kg의 감귤을 생산, 중문단위농협을 통해 3.75kg당 1천원에 출하, 그런대로 수지를 맞췄으나 83년에는 중생종 9천3백kg은 3.75kg당 8백원씩, 1천9백kg은 3.75kg당 7백38원했던 파치감귤값도 안되는 4백50원에 팔아야했다. 고씨는 감귤농사의 시대가 지나간것으로 보고 3번평방m의 절반을 간벌했다.

<도민 전체소득의 25%>
이같은 감귤값의 폭락은 제주도민의 생계를 위협하고있다. 82년 현재 감귤소득은 전체농산물소득의 60%를 차지하는 1천1백여억원으로 제주도민 전체소득 4천5백여억원에는 25%에 해당한다.
또 60∼70%가 영세농가인 감귤재배농가는 이같은 소득감소에다 작목변경에 경비가 많이들어 영농비도 상환하지 못한채 시름에 잠겨있다.
감귤값의 하락은 농가들의 의욕도 떨어뜨려 당면문제인 당도를 높이기 위한 품종개량사업이 제자리걸음할 우려도 안고 있다. 이에따라 제주도일부에서는 바나나·파인애플·키위등 열대성 고급작물에 대한 붐이 서서히 일고 있어 이들 불량묘목이 나도는등 새로운 파동을 일으키고있다.

<조생종등 재배 늘려야>
아직 마땅한 대책은 마련돼있지않다. 강창수제주도산업국장은 『83년산 감귤값이 크게 떨어진것은 대풍인데다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며 아직 다른 농작물재배보다 소득은 높은편』이라며 감귤품종개량사업과 판매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귀포시는 오는30일까지 ▲농지소유자 ▲사용용도 ▲폐원면적등을 조사, 사후지원대책을 마련하고 감귤품종경신사업을 확대하는것을 비롯, 감귤원신규조성을 억제하며 극조생종과 만감류의 재배면적을 늘려 출하시기를 조절하는등의 대책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이미 크게 늘어난 재배면적으로 생산량의 조절이 쉽지않으며 품질개선도 2∼3년사이에 이루어질수 없어 획기적인 대책이 없는 한 재배농가들의 시련은 계속될전망이다.

<제주=김형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