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정답 논술' 쓰려면 출제의도 생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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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수능시험 성적 발표를 앞두고 수험생들이 각 대학 전형에 알맞는 논술관련 참고서들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중앙포토]

논술에는 답이 없다는 오해가 만연해 있다. 하지만 논술에도 답이 있다. 답이 없다면 어떻게 채점을 하고 또 입시에 반영한단 말인가. 물론 소수의 학생을 선발하는 경우라면 글을 굳이 점수화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수백, 수천 명을 선발하는 시험은 그럴 수가 없다. 채점 기준도 있고 써야 할 방향도 있다. 다만 분명히 눈에 띄지 않을 따름이다.

물론 그 답은 객관식 시험의 답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하지만 논술 문제의 형식을 보면 답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논술은 물음과 제시 자료로 되어 있다. 가령 2005학년도 연세대 정시 문제는 "다음 제시문에 담긴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시오"라는 물음과 그림을 포함한 다섯 개의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 물음과 제시 자료에 출제의도가 있으며, 출제의도에 답이 있다.

따라서 제시 자료를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출제 교수의 의도를 가늠해야 한다. 자료들을 아무렇게나 뽑지는 않았을 텐데, 출제자는 왜 이런 자료를 주고 물음을 물었을까? 학생은 항상 이 점을 숙고해야 한다. 수시건 정시건, 문과건 이과건, 구술이건 논술이건 모든 문제에는 출제의도가 있으며 그것을 파악하면 가장 쉽게 답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독심술을 익힐 수도 없고, 어떻게 출제의도를 파악할까? 그것은 결국 제시 자료를 이해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물음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보통 제시 자료는 특정한 해석을 요청한다. 가령 앞의 연세대 문제를 보고, 만일 자료 없이 생각한다면, '세월이 흘러감'은 노년의 지혜나 너그러움 등 긍정적으로 사유되거나, 노인 문제나 고령화 사회 등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될 수 있다. 하지만 자료들은 노년 또는 '세월이 흘러감'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처럼 자료들은 주제에 대한 해석의 방향을 제한하고 있으며, 따라서 나머지 해석들은 오답이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출제의도는 보통 주어진 자료들 속에 포함된다.

만약 제시 자료의 정확한 독해 없이 물음에 답하려 한다면 그것은 서울로 가는 길을 말하라는 요구에 부산 가는 길을 정확히 답하는 격이다. 논술에서는 이렇게 잘못된 답을 논리정연하고 정확하게 서술하는 일도 종종 있다. 거꾸로, 출제의도를 정확히 알게 되면 서투르더라도 좋은 답변을 할 수 있다. 앞의 연세대 문제는 '세월이 흘러감'이 욕망과 현실의 괴리를 낳아 회한, 자포자기, 아쉬움 따위만을 남기게 되는 현상을 위주로 서술하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논술은 암기한 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다. 많은 경우 자료를 해석하도록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평가하고자 한다. 다독보다 정독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 있다. 평소 줄거리를 일별하기보다 깊은 뜻을 간파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사고력 훈련은 이런 식으로만 가능하다.

앞에서는 출제의도를 파악하는 일을 별스럽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평상시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 글쓴이의 글 쓴 의도, 즉 '출제의도'를 파악하는 연습이라고 보면 된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글을 읽을 때는 항상 이렇게 자문해보기 바란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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