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큰 점수차 이길 때 도루하면 맞아도 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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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와 한화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롯데 황재균이 4회엔 김민우, 5회엔 이동걸로부터 잇따라 사구(死球)를 맞은 게 발단이었다. 특히 이동걸은 초구와 2구를 몸쪽 깊은 코스로 던진 데 이어 3구째 빠른 공으로 황재균의 엉덩이를 강타했다. 경기 후 이종운(49) 롯데 감독은 “우리 팀 선수를 다치게 하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상대 김성근(73) 감독을 겨냥한 말이었다. 김 감독은 “빈볼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양팀은 서로 억울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왜 빈볼을 던졌는지,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걸 야구노트에 써봤다. 롯데와 한화, ‘미스터 불문율’의 가상 대화.

이종운 감독(左), 김성근 감독(右)

 한화 : 우리가 왜 황재균을 맞혔는지 알아? 지난 10일 우리가 2-8로 지고 있는데 6회 황재균이 2루타를 친 다음 3루 도루를 했다고. ‘점수차가 클 땐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몰라?

 롯데 : 뭐? 6회 6점 차가 큰 점수차라고? 결국 8-8 동점이 됐잖아. 김태균에게 역전 홈런을 맞은 뒤 11회 말 장성우의 재역전 홈런으로 겨우 이겼다고.

 불문율 : 왜 가만히 있는 날 끌어들이는 거야? 난 이름 그대로 공식 룰이 아니야. ‘몇 회 몇 점 이상 리드할 경우 도루를 하면 안 된다’는 건 없어. 난 그저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예의라고.

 한화 : 결과적으로 10일 도루는 그렇다 치자. 12일은 달라. 1회 말 0-7로 지고 있을 때 황재균이 안타를 치고 나서 또 2루 도루를 했어. 이건 부관참시(剖棺斬屍) 아니야?

 롯데 : 허허, 겨우 1회였어. 너희 에이스 탈보트도 아직 마운드에 있었고. 너희가 끝까지 추격해서 동점이나 역전이 됐다면 우린 바보가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정말 화나는 게 뭔지 알아? 황재균이 4회 맞았을 때는 그냥 1루로 걸어갔어. 그런데 투수 김민우가 미안하다는 신호도 안 보내는 거야. 그리고 이동걸이 다음 타석에서 황재균을 또 맞혔잖아.

 불문율 : 100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는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지. 빈볼을 주고받는 게 예사였어. 1900년대 초 ‘상대 팀 선수도 동업자’라는 의식이 생겨나면서 ‘보복(빈볼)은 한 번으로 끝낸다’는 불문율도 생겼어. 류현진 때문에 2013년 6월 일어난 LA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몸싸움을 기억할 거야. 애리조나 투수가 6회 푸이그를 맞히고, 7회 그레인키를 또 맞혀서 난투극이 벌어졌지. 빈볼을 두 번이나 던졌기 때문이야. 메이저리그는 우리처럼 대충 안 싸워. 주먹이 오간다니까. 돈 매팅리 감독이나 마크 맥과이어 코치도 상대 멱살을 잡았잖아.

 한화 :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 특히 상대가 백기를 들었다면 도루를 하면 안 되잖아. 우리를 기만하는 거잖아.

 불문율 : 그게 참 모호한 부분이야. 유독 한국만 점수차가 많이 날 때 도루를 갖고 자주 싸우거든. 실제로 10점 차가 뒤집히는 경우도 있어. 2012년 9월 12일 ‘고의패배 논란’도 한국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해프닝이지. LG가 0-3으로 뒤진 9회 1사에서 이만수 SK 감독이 투수를 두 번이나 바꾸자 김기태 LG 감독이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보내 경기를 포기한 일 말이야. 이 감독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라 했고, 김 감독은 “우리를 짓밟은 것”이라고 맞섰어. 불문율을 법리적으로 해석할 순 없잖아.

 롯데 : 이번 싸움은 단편적인 빈볼시비가 아니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롯데와 김성근 감독간에 쌓인 앙금이 폭발한 거 아냐? 3년 만에 김 감독을 다시 만나자 3연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묘한 긴장감이 있었지.

 불문율 : 로이스터 감독이 롯데 지휘봉을 잡았던 2008~2010년이 그랬지. 김 감독은 미국 야구를 꺾겠다는 의지가 강했어. 로이스터도 지지 않았지. 그래서 사인 훔치기 논란에다 빈볼시비 등이 끊이지 않았잖아.

 한화 : 당시 김 감독님은 SK 사령탑이었잖아. 그런데 왜 한화랑 연결하는 거야?

 불문율 : 빈볼시비는 꼭 이렇다니까.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양팀 얘기가 달라. 사실 롯데는 ‘한화’가 아닌 ‘김성근 감독의 팀’과 싸운다는 느낌이 있긴 했어. 빈볼만 보면 한화의 잘못이 더 크다고 봐. 그런데 경기 후 이종운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겨냥한 건 다른 문제라고. 빈볼을 김 감독이 지시한 거라고 확신하는 말이잖아.

 이종운 감독의 맹공은 롯데 선수들과 롯데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았다. 김 감독이 빈볼지시를 내렸다면 불문율이 아니라 실정법(KBO 리그 규정 벌칙내규:감독 또는 코치가 빈볼투구를 지시하거나 방조하였다고 간주되었을 때 경고, 제재금 300만원 이하, 출장정지 10경기 이하)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KBO는 오는 15일 이날 시비에 따른 상벌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불문율 : 빈볼도 야구의 일부이긴 하지만 너무 과열됐어. 이쯤 해 두자고. 룰 안에서 겨루는 게 스포츠잖아. 왜 룰 밖에서 위험하게 빈볼을 던지고 몸싸움을 하는 거냐고.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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