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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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월6일.
벌써부터 피난민의 일부가 자기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제발 그들의 늙은 부모님들이나 집들이 모두 무사해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이 피난민들을 따뜻이 맞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모든 도시와 마을이 온통 불타고 파괴되어 잿더미나 폐허로 바뀐 지금 또다른 슬픔과 고생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피난민들 고향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우리적십자사와 사회부의 구호대책본부에서는 귀향하는 피난민들을 위해 주먹밥과 함께 우유를 끓여주고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긴급구호대책을 새우고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해 왔다.
대통령과 나는 피난민수용소와 천막촌에 들러 이들의 구호상망을 살펴보고 왔다. 우리 피난민들이 비록 누더기를 걸치고 천막의 추위속에서 굶주리고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이 각자의 작은 보따리속에 태극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가슴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이 순박하고 조용한 애국동포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큰 힘이며 늘 대통령의 용기를 북돋워준 원동력이었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구국운동에 투신했던 청년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대통령을 도와주고 지원해주며 묵묵히 자기희생을 감내해온 모든 애국동포들의 기대와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38선북쪽의 당을 공산당손에 넘겨주려고 하는 강대국들의 음모를 미리막아야 한다고 대통령은 다짐하고 있다.
기어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하여 국토통일을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민족의 의지를 그 누가 막겠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한일합방으로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 온 민족이 실의에 빠져있던 1911년 두 차례에 걸쳐 나라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과 함께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기위해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을 순례하면서 신앙전도여행을 다닌 일이 있었다.
이때 13도 각 지방의 민가에서 숙박하며 나라와 동포들의 실정을 직접 듣고 보았던 대통령은 한말 조정의 매국노들이 나라를 배신한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며 투지가 강한 민족인가를 알게 되었다.

<육군병원을 위문>
특히 열의에 찬 한국부인들의 애국심과 정성어린 마음씨는 대통령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지금도 그러한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육군병원에 들러 부상병들을 위문한후 부산시장과 함께 도시주변의 외곽지대를 둘아보고 왔다.
농부들은 인분을 비료로 쓰고있기 때문에 분뇨를 모아둔 곳이 많아서 좋지 않은 냄새가 풍겼다. 대통령은 어서 비료를 많이 생산해 이러한 농사방법을 개량해야 겠다고 말했다.
오늘은 음력설이지만 모든 관공서의 공무원들은 물론 부두노동자들까지도 평일과 다름없이 일했다.
대통령은 밤을 새며 주일대표부와 주미대사관의 외교행낭에 넣어 보낼 극비서한들을 7장이나 쓰고 영문서한들은 나에게 직접 타자하도록하여 밤을 꼬박샜다. 나는 이토록 피로감을느끼는데 대통령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별로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않고 있다.
2월7일.
우리 전몰장병 미망인들을 위해 여러모로 지원해주고 있는 미공군의 「엔더슨」장군이 서울거리에는 별로 사람이 보이지않더라는 말을 전하였다. 신앙심 깊은 손원일 제독부인은 군경미망인들을 돕고 있는데 이 미망인들이 만든 아름다운 수공예품을 같이 다니며 팔고 있다.
오늘 나는 해군장교미망인이 짠 훌륭한 식탁보 하나를 샀다.
앞으로는 우리 군경미망인들이 만든 이 정성어린 수예품들을 외국인들에게도 팔기위해 적당한 장소에 상설전시장을 마련하는 문제를 손제독부인과 상의하였다.

<한미협회를 구상>
한때 동부산악지대에서 공산군에 포위되었으나 계속적인 전투와 과감한 행동으로 출로를뚫고나온 미해병 1사단의 「스미드」소장은 미해병들이 패배하여 후퇴중이라는 미국뉴스보도에 화가나서 기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놓고 회견을 했었다. 그는 『기자여러분, 우리는지금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방향을 바꾸어 공격중입니다』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말을 듣고 대통령은 미국기자들은 아군의 승리를 위해 지혜로운 행동을 하고있는 우리 한국기자들에게 수업료를 내고 많은 것을 배워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언론보도는 너무 조심성이 없다고 미국장성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지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올리버」박사에게 한국국민과 미국국민의 우정과 이해를 증진시킬 「한미협회」설립을 위한 제반계획을 성안하여 그것을 실천시키도록 서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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