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충실화와 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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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활동에 관련된 기본법의 하나인 상법이 20여년만에 개정되었다. 이번 개정은 그동안의 현실경제와 사회여건의 변화에 부응하는 현실화의 의미 외에도 최근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대두된 기업집중의 문제와 재무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반영한 점에서 특징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지난 20여년동안 경제의 규모변화는 물론 산업구조나 기업관행, 거래관습의 변화는 엄청난 것이어서 이 중요한 기본법의 내용이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보여온 점에 비추어 그것을 해소하려는 이법 개정의 1차적 과제를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개정내용에서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은 계열사간의 주식상호보유를 제한하는 조항들이었다. 이 새로운 규정들은 지금까지 일반적 관행으로 여겨져 온 계열사간의 주식을 상호 보유하거나 기업집중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온 주식취득방식에 제동을 걸어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을 막고 가공자본에 의한 재무구조의 부실화를 예방하는데 주안을 두고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정에서 기업의 집중화 추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되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물론 기업들은 상호출자를 통해 실제 투자자본보다 훨씬 많은 가공의 자본을 형성, 기업재무 구조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또 이같은 가공적 자본비대화가 금융이용의 수단이 되어 금융부실화를 초래한 병폐를 낳아왔다.
이런 현실은 상법의 가장 기본적인 입법정신의 하나인 자본충실화원칙과 어긋남으로써 군소주주와 종업원 보호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번 개정에서는 모회사가 40%이상 주식을 가진자회사는 그 모회사의 주식을 취득할수 없게하고, 자회사가 10%이상 모회사주식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가질수 없게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한은 현실경제의 다양한 주식소유와 기업간 지배방식에 비추어 법개정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우며 부수적인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할 부문이다.
이번 개정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식회사의 자본금 하한인상이다.
이 문제는 상법, 특히 영미법계 상법의 기본정신의 하나인 기업자유 내지 회사설립의 자유원칙과 다소 상충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볼때 현재 가동중인 법인의 60% 가까운 1만3천여업체가 5천만원미만의 영세 법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금규제가 없어 영세한 가족회사이면서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 이 제도를 악용하는 실례가 적지않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자본금의 하한인상은 적절한 방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활동을 효율화하기 위한 임원 임기조정이나 감사의 관장업무확대는 모두 기업의 책임경영제 확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주식액면 최저가격을 5천원으로 높인 것은 주식시장의 대중화나 다른 나라의 관례에 비추어 지나치게 높게 현실화된 감이 없지 않다.
이 법 개정의 기본목표인 자본충실화와 재무구조개선이 하루속히 실현되고 무분별한 기업집중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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