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무용·영상이 만난 ‘색다른 나라의 앨리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1호 30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극장 ‘용’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시대 개막과 함께 문을 연 805석 규모의 중극장이다.

중앙박물관 극장 ‘용’ 개관 10주년 기념작 김효진 x YMAP: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곳에서 ‘용·텐·페(YONG·10·FESTA)’라 불리는 10주년 기념 무대가 시작됐다. 3월 28일 프리뮤직 강태환·해금 연주자 강은일·가수 강산에의 합동 무대 ‘3강5륜’을 시작으로 거의 매달 한번씩 열린다.

4월 1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는 두 번째 기념 공연은 현대 무용과 미디어 아트의 만남인 ‘김효진 YMAP: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김효진씨와 미디어 퍼포먼스 그룹 와이맵(YMAP·예술감독 김형수 연세대 교수)이 한 무대를 꾸몄다. 무용과 영상을 절묘하게 엮어내는 이들의 무대는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950년대 ‘자유부인’의 이야기를 무대와 영상으로 풀어낸 ‘마담 프리덤’은 2013년 세계 공연계의 큰 잔치인 영국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EIF)로부터 공식 초청받은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현대예술 공연의 전진기지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LA의 ‘레드캣(REDCAT)’ 극장 무대에도 올랐다. 2003년 개관한 이 극장 최초의 한국 작품이었다. 3월 24일부터 3일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도 공연됐다.

이번 무대는 2011년 초연한 작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김효진 연출은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언어적 말장난이 특색인데 우리에겐 앨리스라는 아이콘만 부각되는 어린이용으로 알려져 있다”라며 “이번에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춰 조금 달리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무대가 시작되면 라디오 DJ가 이런 저런 청취자 의견을 전한다. 관객은 차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마음이 된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다. 자신의 목소리에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미 동화책의 내용을 다 아는 아이는 그저 따분할 뿐이다. 어느새 헤드폰을 끼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이에게서 아버지는 점점 깊어져가는 간극을 느낀다. 우리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아이는 앨리스가 된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로 향한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접한 것은 쐐기벌레의 질문이다. “넌 누구니?”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길로 가야할까요?”

김 연출은 이 질문과 대답을 작품을 관통하는 화두로 삼았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고 이제 중년이 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난해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여섯 무용수의 쉴새없는 움직임과 현란한 영상, 몽환적인 음악으로 재현된다. 특히 흑백 격자무늬의 3차원 방이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면서 표현하는 미로속 세상과 무용수 움직임에 맞춰 수많은 진주 구슬들이 움직이고 또 흐트러지는 장면은 생동감이 넘친다. 붉은색 개량 한복 차림을 한 여왕의 강렬한 춤, 그리고 이 무대의 배경으로 나오는 조선의 왕과 왕비를 목각으로 새긴 듯한 문양의 트럼프 영상 역시 인상적이다. 첨단 미디어 통합 솔루션인 영국의 D3 테크놀로지로 만들어낸 힘이다. 다만 ‘마담 프리덤’에서처럼 영상을 무대 바로 위에서가 아닌, 객석 맨 뒤에서 프로젝터로 쏘는 만큼 살짝 힘이 달리는 느낌은 있었다.

여느 작품처럼 앨리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토리텔링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불친절한 작품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앨리스를 바라보는 객석이 그리 편치 않은 이유는 기시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 못지 않은 요지경이기 때문이다. 부디 앨리스가 자신이 누구인지 빨리 깨닫게 되기를, 그래서 이상한 나라에서 빨리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비록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지라도.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YMAP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