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난 청개구리 … 시키면 하기 싫고, 말리면 하고 싶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1. 누구나 마음속에 청개구리가 있다

Q (성격이 이상한가 고민인 남성) 저는 33세의 직장인 남성입니다. 저는 청개구리 마인드가 강합니다. 누가 뭐 하라 그러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 그러면 하고 싶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 땐 청소를 하다가도 누가 ‘너 청소 잘한다’고 칭찬하면 청소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성격이 이상한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선 이 청개구리 마인드 때문에 곤란한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찾아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었는데, 하루는 회의 시간에 상사가 약간 강압적으로 지시를 하니 청개구리 마인드가 튀어 나와 ‘하기 싫다’고 해버린 겁니다. 그간 받았던 점수를 다 날려버린 거죠. 그런 팀원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청개구리 마인드가 튀어 나올 땐 말을 하지 않아도 제 얼굴에 다 나타난다고 합니다. 제가 비정상인 건가요.

A (비가 와도 울지 않는 윤 교수) 청개구리 심리란 논리적으로 합당한 요구를 해도 일단 저항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이 들면 잘못됐다고 스스로를 야단칠 수 있는데, 야단치다 보면 청개구리 심리가 더 커집니다. 청개구리 심리와 관련된 심리 용어로 양가감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과 결혼하자’고 마음 먹으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한쪽에서 ‘결혼해도 될까’라는 저항이 생기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한쪽으로 결정하려고 할 때 반대쪽 생각이 강하게 드는 현상을 양가감정이라 합니다.

 양가감정은 우유부단한 사람한테만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결정에는 논리적 단계와 감성적 단계가 있는데 논리적 단계에서 감성적 단계로 넘어갈 때 과도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양가감정입니다. 역설적으로 양가감정을 거치지 않은 결정은 마음까지 움직여진 게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이해만 한 상태입니다. ‘술 줄여야지’라는 이성적인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먹을까 말까’란 양가감정으로 인한 번민의 과정을 거쳐 감성적 단계로 결정이 넘어와야 합니다. 청개구리 마인드가 만드는 양가감정이란 이성적인 논리를 내 마음이 수용하는 과정입니다.

 양가감정의 상태가 불편하다고 너무 세게 한쪽으로 몰아세우면 반대로 튕겨나가 오히려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변화를 잘 이룰 것 같지만 강한 변화의 의지만큼 변화에 대한 감성적 저항도 크게 일어나 양가감정이란 파도가 더 높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본인에게 청개구리 심리가 강하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고, 그만큼 양가감정도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도움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청개구리 마인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저항도 에너지입니다. 저항의 단계를 넘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확실히 일을 추진할 잠재력을 갖게 됩니다. 마음의 저항이 크게 일어날 때 그것을 억지로 누르지 마시고 정상적인 변화의 과정이라고 지켜보는 태도가 우선 중요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끙끙 고민 마시고 내 말을 잘 들어 줄 친한 친구와 자신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경청해 줄 때 변화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2. 청개구리 길들이는 ‘거울 대화법’

Q 저에게는 현재 대학생인 남동생이 있습니다. 부친이 10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셔서 제가 아버지 역할을 했습니다. 집이 지방이라 현재 서울에서 제가 같이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땐 말 잘 듣던 착한 녀석이었는데 요즘 들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들이받습니다. 청개구리 마인드도 유전이 되는지 이 녀석도 장난이 아닙니다. 집에서 확 쫓아내 버리고 싶은 때도 있지만 그럴 수도 없고요. 얼마 전에 제가 취업 준비 관련 조언을 했더니 ‘1절만 하시죠’라 하는 겁니다. 화가 치밀어 정말 다시 안 볼 것처럼 야단을 쳤는데 시간이 지나니 결국 가족이라 후회가 되네요. 청개구리 짓 하던 제가 벌 받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청개구리들과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나요

A ‘1절만 하시죠’는 잘나가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신곡이죠. 가사를 보면 ‘1절만 하시죠 … 날 내버려둬요. 나만의 세상이 있어 …’라 합니다. 나는 너와 다르니 건드리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왜 우린 잔소리를 이렇게 싫어할까요. 잔소리는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인데요, 그것을 받아들일 때 나의 독립성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의 독립성이 약해지면 결국 ‘나는 너와 다르다’는 느낌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나의 심리적 독립성이 훼손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조언을 하고 싶을 때 즉 내 의견을 잘 전달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할 때 직접적인 조언이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통 전략 중 강력한 의지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직면적 소통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 계속 담배 피우면 폐 다 망가지고 일찍 죽어’라 강하게 이야기하는 경우인데요. 얼핏 효과가 좋을 것 같으나 담배를 오히려 더 피우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당황스럽습니다. 우리 뇌 안에는 정말 청개구리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중적인 마음에서 생기는 저항을 잘 다루며 설득하는 기술로 반영적 경청(reflective listening)이 있습니다. 반영은 거울에 비친 상이나 소리의 반사 등 상대방이 주는 이미지를 받아 되돌려 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되돌려 줄 때 내 속성이 첨가되는 것을 반영이라 합니다. 거울이 파란빛이면 파란색이 첨가돼 반영되는 것이죠.

 일반 경청이 수동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면 반영적 경청은 능동적인 감성 소통 방법입니다. 반영적 경청은 열린 질문과 짝이 되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들 공부했어 안 했어,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해. 엄마 말이 틀린지 말 좀 해봐’라는 질문의 경우 닫힌 질문이고 강한 권유이기에 저항이 증폭됩니다.

 ‘아들 요즘 공부가 잘 안되는 이유가 뭘까’라 이렇게 열린 질문을 하면 지시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묻는 것이기에 저항이 적게 생기고 속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살짝 얻는 것이 반영적 경청입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집중이 잘 안된다니,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루에 10분씩이라도 운동을 하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요. 엄마의 권유가 들어가 있으나 아들 입장에선 자신의 의견에 엄마의 의견이 살짝 보태져 오는 것이어서 남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항이 적게 생깁니다. 내 스스로 행동 변화를 한 것이라 느끼는 것이죠.

 청개구리 심리는 의학 안에서도 중요한 연구 주제인데요. 환자가 약으로만 치료되는 것은 아니죠. 좋지 않은 생활습관을 바로 잡는 건강한 행동변화도 함께 있어야 하는데, 통계를 보면 청개구리 심리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생활습관 문제인 비만만 보아도 고도비만은 12년간 1.7배, 초고도 비만은 2.9배나 증가했으니까요. 의사가 ‘더 많이 먹고 조금 움직이세요’라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소통의 어려움이 있죠. 내가 상대방을 생각해 최상의 내용을 담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소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소통은 내용 이전에 느낌입니다.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이란 사전적 의미처럼 저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 사이에 장애물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장애물이 없는 두 마음 사이에 다양한 내용이 오고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장애물은 내버려두고 계속 내용만 바꾸어보았자 소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