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이웃집 개 때렸는데 처벌 불가?

중앙일보

입력

술에 취해 이웃의 개를 두들겨 팬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처벌은 면할 것으로 보인다. 만취해 목줄이 채워진 개에게 다가간 잘못은 있지만 개가 먼저 공격했다는 이유에서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남의 개를 때려 다치게 한 혐의(재물손괴)로 정모(5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5일 밝혔다.

정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11시쯤 광주광역시 두암동의 한 사무실 앞마당에서 서모(60ㆍ여)씨의 진돗개에게 쇠막대기를 휘두르는 등 수차례 때린 혐의다. 서씨의 진돗개는 눈을 심하게 다쳐 실명 위기다. 경찰은 현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수거해 정씨를 검거했다.

정씨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서씨 사무실 앞마당 인근에서 노상방뇨를 하려다가 개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경찰에서 “개가 양쪽 발 뒤꿈치와 종아리를 물어 심하게 다쳤다. 나도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정씨의 몸에서 실제 상처를 확인한 뒤 형법상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판단, 혐의 없음 의견으로 송치하기로 했다. 정씨가 목줄이 채워진 개에 접근한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피해를 입고 어쩔 수 없이 반격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형법 제22조(긴급피난)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개에게 가까이 다가가 화를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긴급피난으로 봐야 할 것 같다”며 “개 목줄이 채워져 있었던 만큼 서씨가 민사소송을 한다면 다친 개에 대한 보상은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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