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내가 자본주의적인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신문을 보면 주가.코스닥.이자 등 모르는 말투성이였고 남한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휴넷의 조영탁 사장은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번 과정을 무료로 제공했다"며 "모두 29명이 지원했는데 이 중 10명만이 최종 수료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황해도 지방의 한 해안마을에서 자랐다. 출신 성분이 나빠 남들보다 더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의 조부모는 경남 출신이다. 일제 말기에 중국을 거쳐 황해도 지방에 정착했다. 이 때문에 평소 주변에 남한 얘기를 많이 했던 아버지는 손씨가 어렸을 때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껏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손씨는 북한에서 전문대 건축과를 간신히 졸업하고 4년여 동안 건설회사에서 건축기사로 일했다. 1990년대 중반 경제가 급속히 어려워지고 탈북 바람이 일자 손씨도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갈 것을 결심했다. 99년 겨울 꽁꽁 언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했다. 이때부터 남한으로 갈 자금을 모으기 위해 식당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003년 1월 간신히 한국 땅에 도착한 손씨는 정부의 도움으로 한양대에 편입했다. 그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마을로 돌아가 내 이름이 새겨진 아파트를 지을 것"이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손씨는 북에 남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이름과 고향 마을 등을 가명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동안 용모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얼굴은 드러내도 될 것 같다며 사진 촬영에 응했다.
글=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