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포럼

근소세에 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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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런저런 공제 항목이 늘어나면서 면세점은 매년 높아졌다. 급기야 세금을 전혀 안 내는 근로소득자가 전체의 49%에 이르렀다.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근로소득자 과세자 비율이 80%를 넘는 데 비해 우리는 세금 내는 근로자 비율이 너무 낮다. 세금을 안 내는 근로자들은 세금 부담이 없으니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건강한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 개세(皆稅)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더러, 많은 국민을 국가 운영의 책임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무임승차와 공짜 점심이 만연한 사회에서 근로의욕과 활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극빈층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소득이 적으면 적은 대로 최소한의 세금은 내게 한 뒤 당당하게 정부의 서비스를 요구하도록 하는 게 옳다.

정치인들이 면세점을 올려 생색내는 사이 근로소득세제는 누더기 모양이 됐다. 연말정산을 해 본 월급쟁이들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세제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헷갈린다. 다 누더기 세제 탓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정산의 계절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샐러리맨들은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공제항목 하나라도 빠뜨릴세라 서식의 빈칸을 빼곡히 채워 넣는다.

월급이 또박또박 나오는 게 어디냐며 애써 위안을 삼아 보지만 왠지 억울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다시 들여다본 월급명세서에 찍힌 갑근세 항목이 유난히 커 보인다. 이 판에 정부가 내년에 갑근세를 훨씬 더 걷을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오자 울화가 치밀고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내년에 월급쟁이 개개인이 내는 세금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 급여가 오르면 인상분에 해당하는 세금만 더 내면 되고, 월급이 안 오르면 세금도 늘지 않는다.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세수계획은 내년에 경기가 좋아져 월급도 오르고 새로 취업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전체 근소세 세입을 추정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 보자.

정작 열받을 일은 따로 있다. 월급쟁이들은 세금을 빼먹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다. 월급을 손에 쥐어 보기도 전에 아예 세금을 원천징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득이 비슷하거나 더 많은 자영업자에게는 세금을 안 내거나 줄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국세청은 자영업자의 소득을 사전에 알 도리가 없다. 그러니 당사자의 자진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신고 내용이 미심쩍은 경우엔 세무조사를 한다지만 그 많은 자영업자를 모두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신고금액이 웬만하면 그냥 인정해 준다. 영세 사업자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마저 소득을 실제보다 훨씬 줄여 신고한다는 게 문제다. 이런 관행이 수십 년간 계속되다 보니 이제 와서 갑자기 과표를 현실화하기도 쉽지 않다.

한덕수 부총리는 월급쟁이들의 불만이 커지자 뒤늦게 전문직 종사자들의 세원(稅源) 관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십수 년 전부터 듣던 소리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니 두고 볼 일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