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한국류와 일본류의 불꽃 튀는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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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요다 노리모토 9단(일본) ) ● . 이세돌 9단(한국)

장면 1=하변부터 짚고 넘어가자. 일류 프로들은 이세돌 9단이 둔 흑▲를 가리키며 "너무 근사한 수"라고 극찬한다.

A로 나가면 어쩌느냐고 묻자 B로 막아 죽인다고 한다. 그런데도 흑▲가 좋은 수인 것은 이 수가 하변 백집을 축소시키면서도 백의 공격 의지를 가볍게 꺾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바둑은 특히 흑▲ 같은 수에 열광한다. 일본류의 고수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도 흑?에 맥이 상당히 풀려 버렸을 것이다. 그런 요다에게 이세돌의 71이 또다시 어려운 숙제를 내고 있다. 68, 70으로 모양을 갖췄는데도 71로 들여다보는 심사가 고약(?)하다. 요다는 장고에 빠진다. 백도 꽤 두터운데 이렇게까지 올 수 있는 것인가.

그냥 잇는 것은 기가 빠진 수. 죽기보다 싫다.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이런 요다의 심정엔 일본류의 핵심이랄까, 자존심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장면 2=요다는 기어이 72로 반발했다. 이게 일본류다. 이세돌 역시 73, 75으로 지체 없이 움직인다. 모양은 나쁘지만 꾸역꾸역 움직인다. 이건 한국류다. 흑이 쓸데없는 손찌검을 해 돌을 무겁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백이 작은 상처를 건드려 큰 종기로 키우고 있는 것일까.

76, 78로 한 점을 때려내며 호기롭게 움직이던 백의 손이 79에서 멈칫한다. '두점머리는 죽어도 두드려라'고 말하는 일본 바둑의 정신에 따른다면 '참고도' 백1 의 곳은 목숨을 걸고 나가야 할 곳이다. 그런데 흑 2로 끊는 독수가 있지 않는가. 곧 잡힐 것 같은 흑이지만 8로 젖힐 때 끊는 수가 없지 않은가.

끝내 80으로 되돌아서는 요다의 모습이 쓸쓸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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