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근로소득세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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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은 14일 이례적으로 동시에 기자회견과 반박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섰다. 내년에 봉급생활자에게 적용하는 세율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금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임금이 오르는 데다 고용이 늘어나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재정경제부 김낙회 소득세제과장은 "내년 갑근세 세수 전망을 크게 늘려 잡은 것은 내년 임금 상승률이 7.2%로 올해(6.3%)보다 높고, 임금 근로자수도 2.1% 늘어나 세수 총액이 증가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며 "일부 언론이 마치 개별 근로자의 세금을 올리는 것으로 보도한 것은 세수 총액과 개별 근로자의 세금 부담을 혼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로소득세는 누진세율로 돼 있기 때문에 내년에 임금이 올라도 서민층보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소득세와 비교해서도 갑근세 세수가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은 봉급생활자의 소득이 유리알처럼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란 주장도 나온다.

?갑근세 증가율 논란=내년 갑근세 세수가 26% 늘어난다는 수치는 정부가 국회예산처에 제출한 자료다. 이 수치는 지난해 말 정부가 예상한 올해 갑근세 세수와 내년 세수 전망을 비교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실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갑근세 세수는 당초 정부 예상보다 12%나 늘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근로소득세율을 일률적으로 1%포인트 낮췄기 때문에 갑근세 세수가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봤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세수가 목표를 초과한 것이다. 따라서 올해 실제 걷힐 갑근세와 내년 세수 전망을 비교하면 증가율은 12.4%로 떨어진다.

이 역시 정부가 인위적으로 세율을 올려서 늘어난 게 아니라고 정부.여당은 주장한다. 열린우리당 문석호 제3정조위원장은 "인상이라는 것은 임의로 올리는 것인데, 세법은 바뀐 게 없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세금 부담 액수가 늘어난 것일 뿐"이라며 "정부.여당이 일부러 세금을 올린 것처럼 알려진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여야 세금 공방=정부와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8.31 부동산대책을 뒷받침할 각종 부동산 관련 세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올리는 게 골자다. 이런 마당에 봉급생활자의 갑근세까지 내년에 큰 폭으로 올리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정부와 여당으로선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감세안을 한층 적극적인 공세로 밀어붙이는 것을 봉쇄하자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대로 계산하더라도 내년 갑근세 세수가 12.4%나 증가해 법인세 등 기업이 내는 세금 증가폭보다 훨씬 크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내는 종합소득세 세수는 정부 기준으로 해도 내년에 5.8% 늘어나는 데 그친다. 외국인 근로소득자가 내는 을종 소득세는 6.6% 줄어든다. 한마디로 내년 나라살림을 봉급생활자의 호주머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내년부터 적용키로 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인하, 각종 주택자금대출에 대한 소득공제 축소 등 근로소득자의 세금을 올리는 세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주세율이나 도시가스 세금을 올리는 방안도 명분이 약해졌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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