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감동주는 MBC '느낌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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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대에 엇비슷한 프로들을 내보내 시청자의 불만을 사던 일이 서서히 줄고 있어 다행이다. 다른 장르, 다른 소재로 경쟁하는 건 시청자 '복지' 차원에서도 권장할 만한 현상이다. 특히 토요일 밤 10시대에 지상파 4개 채널의 '대결'양상이 볼 만하다.

역사를 재구성한 '무인시대'(KBS1)는 제목 그대로 문(文)과 무(武)의 대결이 중심 축이다. '추적 60분'(KBS 2)은 범죄.질병.가난 등과 싸우는 모습(고발)이 주를 이룬다.

천년지애(SBS)는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과 미움의 대결구도가 흥미를 끈다. 시간적으로 역사(K1)와 현재(K2), 그리고 그 둘을 오락가락(S)하고는 있지만 셋 모두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잘 사는 것일까'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MBC의 '느낌표' 역시 고정관념과의 '대결'을 매주 선보인다. 우선 오락은 오락다워야 하고 교양은 교양스러워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부수는 시도가 상쾌하다(애초에 방송에서 그 둘을 나눈다는 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예술가형 PD가 있고 기술자형 PD가 있고 공무원형 PD도 있지만 이 프로의 책임자인 김영희 PD는 사회운동가, 혹은 NGO형 PD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전파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양심 냉장고'에서 "전 국민이 칭찬 받는 그 날까지" '칭찬합시다'를 외친 그는 방송을 통한 의식개혁을 지금도 추진 중이다.

'느낌표'는 알맹이에서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무너뜨렸다. TV와 책의 관계는 상극일 것 같은데 오히려 '바보상자'를 '책상자'로 만든 게 이 프로의 '책 책 책을 읽읍시다'였다. 지금은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을 시청자의 명시거리 안으로 끌어당기는 실험을 꾸준히 하고 있다. 게시판에는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찬사도 보인다.

교양과 오락의 경계를 이야기할 때면 '개그콘서트'(K2)의 옥동자(정종철)가 온곡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낼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 건 흉내내기 재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상황이 적잖게 공감대를 형성한 까닭이기도 하다.

교장 선생님의 설교는 늘 유익하다. 한 마디로 좋은 말씀이다. 그러나 지루하다. 마이크 상태도 불량하다. 건강한 내용을 기술적으로(표현기술이나 음향기술)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건 실용적일 뿐 아니라 인도주의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좋은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전달받고 싶어한다. '느낌표'는 이 점에 착안했고 성공했다.

시청 후 느낌이 남지 않는 프로는 없다. 그러나 느낌표를 찍을 만한 프로는 드물다. '느낌표'식 캠페인의 요체는 의미 있는 내용을 재미있는 형식에 실어 전달하는 것이다.

다만 그 재미가 의미에 잘 버무려지지 않고 겉돌 수 있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감동은 자연의 선물이다. 다큐멘터리가 드라마틱할 수는 있지만 다큐가 드라마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양(止揚)과 지향(指向) 사이에 늘 물음표를 던져야 '느낌표'도 산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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