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가짜영어 바로잡기' 책 낸 DJ 1호 최동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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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달 고국을 찾은 '국내 DJ(디스크 자키) 1호' 최동욱(崔東旭.67.재미)씨는 요즘 어느 때보다 흐뭇한 날을 보내고 있다.

1991년 이민을 떠나면서 시작했던 외래어 오.남용 사례에 대한 연구가 최근 '가짜영어 바로잡기 사전'이라는 책으로 결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아들 성원(41)씨도 아버지가 오랜만에 서울을 찾기 직전부터 한국에서 DJ로 활동하게 됐기 때문이다.

崔씨는 현재 로스앤젤레스의 한인방송인 '라디오 서울'에서 매일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세시의 다이얼'을, 아들 성원씨는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운영하는 TBN 교통방송(서울 FM 100.5Mhz)에서 일요일 오전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일요 음악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대(代)를 이은 DJ인 셈이다. 아들 성원씨는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두살 때부터 저는 동요 대신 '삐빠빠룰라 쉬스 마이 베이비…'를 불렀습니다. 그것도 빨랫방망이를 기타삼아 옆구리에 끼고 말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물론 주위 어른들께서 많이 귀여워해 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 정도로 집안에서는 팝음악이 흘러넘쳤던 거죠. 게다가 독서하시는 아버지를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아버님께서는 집에 돌아오시면 일정 시간 꼭 책을 보셨거든요. 어린 생각에도 아버지는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DJ도 당연히 아버지 때문에 선택하게 된 직업이고요."

성원씨의 회상처럼 崔씨의 지적 호기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가짜영어…'도 바로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가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외래어를 사용할 때마다 '혹시 잘못 쓰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는데 미국에 가 보니까 틀린 것이 더 많이 보이더군요. 예컨대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일컫는 '골든 타임'과 경기장을 뜻하는 '그라운드'는 각각 '프라임 타임'과 '필드'라고 해야 맞는 거죠. 이처럼 잘못 쓰이고 있는 외래어를 나열하다 보니 무려 1천4백여개나 되더군요. 이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10여년 동안 참고한 사전만 3백50종이 넘습니다."

이렇게 꼼꼼한 성격의 崔씨이기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왕초보 DJ' 성원씨의 진행솜씨가 도마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아들이 대견하긴 하지만 아직 DJ로 인정 못합니다. DJ란 전문성이 생명인데 지식의 측면에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죠"라며 쓴소리를 뱉었다.

崔씨에 따르면 미국에서 DJ는 남이 써준 원고를 읽기만 하는 '로-프로파일(low-profile) DJ', 음악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DJ', 한 시간 가량 뉴스 해설이나 대담을 곁들여 폭넓은 주제를 소화할 수 있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 DJ'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형 방송사가 퍼스낼리티 DJ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당연히 崔씨가 아들에게 주문하는 것은 퍼스낼리티 DJ가 되라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성원씨에게 "뭘 하든 자신이 계획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법이야. 철저히 직업인이 되어야 하고, 늘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지. 또 한 가지, DJ는 백인백태여야 시청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으니까 개성이 매우 중요하단다"고 긴 충고를 했다.

아들에게 너무 큰 부담만 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래도 국내 다른 DJ보다는 아들이 나은 것 같다"는 말로 용기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편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세시의 다이얼'에서 60년대의 추억과 노래들로 많은 교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崔씨는 "주로 이민 1세대인 애청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환상 속에 산다'라며 감사의 글까지 보내온다"며 "세월과 함께 더욱 원숙해진 진행 솜씨를 고국 팬들에게 다시 한번 멋있게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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