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미숙」 끝내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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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실력에 따른 완패였다. 비로 진창이되고 잔디가 떡같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울퉁불퉁한 그라운드의 악조건에 의한 불운이었다는 해석은 한갓 작은 원인을 과장한 자의에 불과하다.
널리 팽배해있던 「신선한 화랑」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감은 1일밤 방콕국립경기장에서 태국으로부터 냉엄한 일격을 받아 찬물이 끼얹어진 셈이다.
아직 절망은 아니며 한국축구 특유의 투지가 살아나 나머지 경기에서 연승을 구가할수도 있지만 화랑은 이미 발목에 족쇄를감고 뛰는것과 같은 힘겨운 고투를 해야하는 수렁에 빠졌다.
약 한달전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팀을 초청한 4개국 국제대회에서 제기되었던 화랑의 불안한 약점이 이날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1차예선 첫경기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미드필드를 전혀 장악하지 못하는 링커진의 허약, 스피드가 부족한 수비진, 한폭날개 (욍) 만 살아있는데다 공중전 (헤딩) 에 약한 공격진, 그리고 전반적으로 개인기가 미숙하고 노련미 부족으로 인한 탄력있는 경기운영의 결여등이다.
화랑의 풀백진은 태국의 공격진인 「피아퐁」·「워라웡」·「마다르」의 스피드를 거의 잡지못한채 뚫리기 일쑤였다. 정용환 김삼수의 링커진은 미드필드를 빈터로 남겨둔채 공격과 수비 어느쪽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공격진의 경우 왼쪽 윙인 이경남은 유명무실할뿐 오른쪽의 이태형에게만 의존했다. 중앙돌파가 김종부 신연호에 의해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이태형의존의 편익비행을 하는 화랑에대해 태국수비는 맥을 포착하기가 쉬울수밖에 없다.
대사를 눈앞에두고 그라운드안의 리더격이었던 주전들을 고스란히 축출했던 화랑의 내분과 시련에 관련되는 일종의 응보가 태국에 2-1역전패로 나타났다고 보아도 될일이다.
스피디한 웡플레이어 변병주가 빠짐으로써 화랑은 한쪽날개를 잃었고 링커 이태호의 제거로 허리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으며 FB박경훈의 축출로 수비간의 스피드가 반감한것이다. 결국 이러한 『불가피했던』수술후 그 손실을 화랑은 거의 보완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날 실증되었다. 화랑은 상당한 행운을 타며 승리를 잡는듯했다.
태국의 예리한 파상공격에 시달려 불안을 보이다가 전반40분 태국수비선수가 미끄러운 땅에서 중심을 잡지 못할때 이태형이 무방비의 둘격찬스를 포착했고 문전센터링을 날리자 신연호가 육탄차단을 감행하는 GK「나라삭」을 꿰뚫는 슛을 성공, 기선을 제압했다.
화랑은 또 후반7분 전종선의 파울로 페널티킥읕 허용했으나 「피아퐁」이 어처구니없게도 꼴포스트를 때리는 실축읕 범해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태국의 집요한 공세를 화랑은 효과적으로 제지하기엔 힘이 부쳤고 후반20분「워라웡」의 깨끗한 헤딩슛, 후반27분「피아퐁」의 문전대시에 의한슛을 허무하게 허용, 역전패를 안았다.
평균연령 20세미만의 설익은 화랑은 진창의 그라운드에서 중·장거리슛을 과감히 시도하는 상식을 저버렸고 선제득점의 유리한 고지에서 태국의 총공세를 미드필드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견제·약화시키는 기본적인 전술도 구사할줄 몰랐다.
이날 중공은 호옹을 4-0으로 대파, 예상대로 한국·증공·태국의 3파전을 예고했으나 나란히 1승을 선취한 중공과 태국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한국은 3일밤 중공과 대결 (하오6시·출라코른대학구장)하며 이경기를 지거나 비기면 헤어나기 어려운 궁지에 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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