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통장 통해 뇌물수수|이헌승 전조은행장등, 사상 최고액 챙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조흥은행 거액어음 부정지급보증사건은 금융부정액수가 1천7백억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라는 점과 행원만도 지점장 3명을 포함, 18명에 이헌승은행장까지 모두 19명이 연루됐다는 정에서 충격을 주고있다. 더구나 뇌물액수 또한 금융부정사상 최고액수를 기록했고 온라인통장을 통해 거액의 뇌물을 공공연 히 받아내는 등 수법이 지능적이고 대담한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사상최대의 뇌물>
이행장의 단독수뢰액수도 2억원을 넘어 지난해 이·장사건 때 당시 조흥은행장 임재수씨가 받았던 1억5천만원 보다 5천만원이 더 많은 액수였으며 명성사건때 윤자중장관의 8천만원보다 2.5배나 많았다.
50만원짜리 월급장이가 33년간을 꼬박 저축해야 모아질 수 있는 거액을 불과 10여개월 사이에 손쉽게 거둬들인 것이다.
이들은 뇌물을 받을 때 통상 써오던 「봉투식」에서 「온라인통장식」을 개발해냈고 범행이 매일 계속되는 것이어서 건당이 아닌 매주주급제로 받았다.
박종기차장과 고준호지점장 등은 온라인 통장에 입금되는 뇌물을 필요할 때마다 찾아 썼다.
고지점장과 박차장 등의 주급료(?)는 1백만∼2백만원씩. 나머지 행원은 어음부정지급보증업무의 기여도에 따라 월50만∼1백만원씌 차별해 받았다.
범행의 주범적이며 동시에 뇌물 전달책으로 미국에 도피한 박종기차장은 상사나 다른 행원들에게 전달되는 뇌물의 상당액을 중간에서 낚아채 그가 착복한 뇌물만도 3억2천만원이나 됐다.
은행원들은 은행봉급보다 뇌물액수가 훨씬 많고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바람에 자신이 은행소속인지 두 회사 소속인지 혼돈이 갈때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영동개발진흥의 이·곽씨 모자도 조흥은행 관계직원들을 자기회사 자금과 직원쯤으로 생각했으며 이들에게 주는 뇌물을 사원에게 나가는「봉급」으로 여길 정도였다는 것이다.

<수법>
뇌물전달방법은 처음부터 온라인이 이용되지 않았다. 처음엔 곽경배씨가 지점장실로 찾아가 고씨에게 전달하며 다시 설씨가 박차장에게 나눠주는 방식을 택했고 박씨의 역할이 커지면서부터는 여비서 이양을 통해 박씨에게 직접 전해주기도 했다.
이양과 박차장의 뇌물수수장소는 무교동 K빌딩 지하 코피숍.
중앙지점과는 멀리 떨어졌고 주로 퇴근 후 만났기 때문에 마음 놓고 봉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봉투식은 아무래도 번거롭고 주위의 눈을 의식해야돼 온라인방식을 착안하게 됐다는 것. 박차장은 주급 뇌물 이외에도 필요할 때마다 회사 측에 손을 벌렸다. 이때의 명목은 전입 은행원에 대한 세뇌 자금. 정기인사 등으로 범행의 중요역할을 한 사람이 갈릴 경우 새로운 사람이 무리 없이 전임자의 역할을 인수·인계 받도록 하기외해 회사측으로부터 일정액수의 포섭 (?)자금을 받았다는 것.
박차장은 전은행원이 첫 출근하는 날 환영파티를 열어 주었다. 최고급 호화살롱으로 데려가 향응을 베풀면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쪼들려오던 당사자로선 박차장의 호의에 감격하게 마련이었고 주석이 파 할 때는 거액의 봉투도 주머니에 질러 주어 당장 「박차장 사람」이 됐다는 것.
박차장은 다음남 아친 전입행원을 다시 다방으로 불러내 내막을 브리핑해 주고 협조를 구했다. 범행이 3년간 지속필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검찰에서 이들 행원들은 한결같이 『돈에 눈이 어두웠었다』 고 실토했다.
신한주철의 손사창은 은행원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거나 경리부장을 통해 봉투를 전달했다.

<이행장의 경우>
은행장 이헌승씨에게는 6차례 모두 이복례씨가 직접 전달했다. 최초는 지난해 11월. 이회장은 백병원에 허리디스크 치료차 입원했던 이행장에게 문병을 핑계로 찾아가 1천만원싸리 수표가 든 「석 쾌유」봉투를 자연스럽게 놓고 나온 것이 첫 번째 거래였다.
두 번째는 이행장이 퇴원하자마자 자금이 몹시 급해져 행장실로 찾아가 다시 1천만원을 건네주고 대충 상환기일 연장을 부탁했다.
이행장은 이때부터 영동개발진흥의 금융특혜를 다짐하고 중앙지점에 ▲증대 ▲재대 ▲방화 지급보증▲대환 등을 지시했다는 것.
지난 8월 명성사건 이후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부터 이회장의 부탁도 같아지고 뇌물액수도 3천만원, 3천만원. 5천만원. 7선천원으로 점차 늘어났다. <허남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