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김연아’ 한국 아이스댄스 부활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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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평창에서 이들을 볼 수 있을까. 김레베카(앞)와 키릴 미노프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리투아니아 동포 김레베카(17)와 러시아 출신 키릴 미노프(22)는 한국 피겨 아이스댄스의 희망이다.

 김레베카-키릴 미노프 조는 12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 아이스댄스 쇼트댄스에 나섰다. 합계 46.54점(기술점수 23.53점+예술점수 23.01점)으로 13개 팀 가운데 9위에 올랐다. 쇼트 1위 매디슨 초크-에반 베이츠(미국·70.38점)에 크게 뒤졌지만 둘은 환하게 웃었다. 김레베카는 “한국 링크라서 편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미노프도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덕분에 힘이 났다”고 했다.

 김레베카와 미노프는 한국 아이스댄스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25·은퇴) 덕분에 싱글 선수들이 꽤 많이 나왔지만, 두 명이 호흡을 맞추는 아이스댄스와 페어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특히 아이스댄스는 2006년 김혜민-고(故) 김민우(2007년 교통사고로 사망) 이후 국내 선수가 아예 없었다. 어렵게 팀을 결성해도 성격 차 등을 이유로 파트너끼리 갈라서는 일이 많았다.

 1998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김레베카는 13세까지 여자 싱글 선수였다. 그는 각종 대회 노비스 부문(13세 이하)에서 좋은 성적을 내 ‘리투아니아의 김연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김레베카는 2011년 빙상연맹의 아이스댄스 육성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항로를 바꿨다. 이듬해 러시아에서 알렉산더 스비닌 코치의 소개로 미노프를 만났다. 아이스댄스 선수로 뛰던 미노프는 파트너와 헤어진 상태였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김레베카는 미노프와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호흡을 맞췄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아이스댄스 전문 클럽에서 집중 트레이닝을 받은 둘은 2012년 8월 주니어 대표 선발전을 통해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권을 얻어 대회에 나섰다. 지난 2013년 11월 독일 NRW 트로피 주니어 아이스댄스에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아이스댄스 사상 최초 국제대회 우승이었다. 이번 시즌 시니어 부문에 데뷔한 뒤에도 볼보컵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의 꿈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노프의 국적이 걸림돌이다. 김레베카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미노프는 러시아 국적이다. 공인 대회는 두 선수의 국적이 다를 경우 한 선수의 국적을 택해 출전할 수 있지만 올림픽에선 두 선수 모두 국적이 같아야 한다. 미노프는 틈틈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귀화를 준비하고 있다. 미노프는 “레베카와 팀을 이룰 때부터 국적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우리말과 러시아어·리투아니아어에 능통한 김레베카는 “아직 3년이나 남았다. 평창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둘은 13일 대회 프리댄스에 출전한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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