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내 손 안의 TV에선 1분도 길다, 콩트도 영화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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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은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달 위성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에서 방송된 영화 '라이프'의 상영 시간은 1분14초. 7~9월 열린 제1회 DMB 영화제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나무 이미지로 표현했다. DMB에서 함께 전파를 탄 10여 편의 영화도 길이가 20분을 넘지 않는다.

더 짧게, 더 솔직하게-. 가입자 25만 명을 돌파한 위성 DMB가 콘텐트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텃밭이던 드라마.시트콤.코미디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 현재 DMB 콘텐트 공모까지 받고 있어 기발한 작품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첨단 기술로 부활한 '콩트'=휴대전화로 방송을 보는 위성 DMB는 비디오 11개, 오디오 26개 채널을 운용 중이다. 그 중 '채널 블루'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전용 채널이다. 여기서 방영되는 '코미디 카운트다운'은 30분에 30~50개 코너를 내보낸다. 쉴새없이 코미디가 쏟아진다.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보는 DMB 특성을 살리기 위한 편성이다. 빠른 호흡을 자랑한다는 KBS '개그콘서트'의 경우 70분 방영에 코너는 12~13개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콩트라는 사실. 지상파 코미디의 빠른 비트와 현란한 몸 동작은 찾을 수 없다. 학교와 회사를 구분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김 대리의 이야기를 그린 '애물단지 김 대리'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명맥을 잃은 콩트가 DMB란 최첨단 기기를 통해 부활한 셈이다.

# 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위성 DMB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얍!'이다. 모바일만을 위한 시트콤이다. 초능력 세계에 살던 남자들이 인간 세계에서 벌이는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특징은 우선 분량이 짧다는 점. 20분이 채 안 된다. 촬영 기법도 다르다. 멀리서 인물을 잡는 '롱 샷'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몸으로 웃기는 일도 드물다. 화면이 작기 때문이다.

지상파와 더 차별화 되는 부분은 내용이다. '얍'의 이용해 감독은 "그간 지상파의 청춘 시트콤은 몸만 대학생일 뿐 사실상 중.고등학생의 언어와 생각을 표현했다. 일반 대중에게 무차별로 노출되는 방송의 특성상 표현 수위에 제약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개인 매체인 DMB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한다. 한 예로 '얍'에선 첫 키스 후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비 올 때 첫 키스를 한 남녀 주인공이 비가 내리자 서로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 우린 '세계 최초'로 간다=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 휴대전화를 이용한 새로운 대중문화의 조류를 특집으로 실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훨씬 앞서간다. DMB용 콘텐트엔 대부분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다. 12월에는 지상파 DMB까지 출범한다. 윤영관 MBC 편성본부장은 "DMB용으로 뉴스를 짧게 만드는 등 콘텐트를 재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성 DMB의 경우 아직까지 가입자 수는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DMB 특유의 콘텐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DMB로 대표되는 콘텐트 혁명이 대중문화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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