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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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일보는 22일로써 창간18주년을 맞았다. 인생 역정으로 치면 비로소 성년의 연대다.
옛말에 「십팔반」이라는 말이 있다. 무예를 익히는 사람이 「십팔반」을 끝마치면 비기의 전부를 터득했다는 뜻이다. 성숙, 혹은 완성의 경지다.
불교의 「십팔천」은 삼십삼천 중에서 색계에 있는 열여덟천을 말한다. 색계라면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단계. 욕계처럼 탐욕스럽지는 않으나 아직 색법을 벗어나지 못한 세계다. 바로 그 색법을 벗어나기 위해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거듭해야한다. 끊임없이 옥석을 갈고 닦는 자기연마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성이란 있을수 없다. 한 순간의 완성은 있을수 있어도 영원한 완성은 없다. 달 (월)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완성이후엔 또 다시 새로운 완성을 향한 출발이 있을뿐이다. 아니면 그순간 이후는 소멸밖에 없다.
「끊임 없는 자기 노력」은 제2의 완성으로 가는 필연의 과정이다.
인류 역사를 보아도 18세기는 창업을 앞둔 비범한 연대였다. 프랑스사학자 「장·델로름」의 『문명사연표』는 고전적 질서를 거쳐 「계몽적 사조의 세기」로, 그것이 「구제도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8세기를 마무리 짓는 거대한 장은 역시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을 들수 있다. 사람이 비로소 사람의 구실을 할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18세기에는 선비들이 「실사구시」「이용후생」에 관한 연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공리공론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 무렵 유형원, 이익, 정약용과 같은 실학의 대가들이 앞을 다투어 명저를 내놓은 것은 진운의 징표다.
그런 사상은 예술의 세계에 까지 미쳐 조선화가들은 진경산수로 눈을 돌렸다. 종래의 중국화에서 볼수 있던 이상향의 미몽을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비로소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인왕제색도)나 금강전도는 우리 미술사에도 남는 명화다.
더구나 이 시대에 풍속화가 유행한 것도 재미있다. 김홍도나 신윤복같은 화가의 그림을 보면 미소와 멋과 대범(대범)과 해탈의 세계가 있다. 사람들은 비로소 사는 보람과 멋을 알게된 시대다.
어디 그뿐인가. 정조때부터 쓰인 조선 안료는 청화백자를 빚어냈다. 산수, 화조, 초목을 붓으로 슬쩍 그려 구운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비할바 아니다. 그야말로 한국적인 야취에 넘치는 소박한 시감이 깃들여 있다.
중앙일보가 이제「18」연의 연륜을 딛고 또 다시 힘찬 출발을 기약하는 것은 「창업」을 넘어 「수성」의 세계로 가는 것이나 같다. 새삼 배전의 연마를 삼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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