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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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뗏목배 해모수호의 항해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거제도를 떠나 일본구주의 가라쓰 (당진) 까지로 예정되었던 항해률 아직 다 끝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4명의 젊은이를 태운해모수호는 봉마도와 일기도를 거쳐 오도열도에 이르는 장장 5백여㎞의 뱃길을 18일동안 항해한 실적을 남겼다.
2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일문화교류사의 역정을 밝히겠다는 젊은이들의 의욕은 무언가큰것을 이루어 놓았다.
그들의 모험심과 역사의식은 무엇보다 값져 보인다.
『망망대해에서 집채만한 파도와외로운 싸움을 벌일 때 우리 선조들이 쌓아올린 문화의 예지가어떻게 일본에 전해졌는지를 느낄수 있었다』 고 그들은 말하고있다.
이들의 뗏목여행은 이번으로 두번째.작년에도 그들은 해모수l호로 대한해협 횡단을 시도했다가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하루만에구조됐었다.
그러나 그때 뗏목배 자체는 일본의 야마구찌젠(산구현)하기 (추)시 이시마우케 앞바다에 해류를 타고 도착했었다.
해모수호라는 이름도 그들의 역사의식을 밝혀준다.해모수는 북부여의 시조. 그는 천제의 아들로 하백의 딸 유화와의 사이에서 고구려 시조 고주몽을 낳았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해모수호의 선기에는 태양과 다섯마리용을 그려 넣었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다섯마리의 용이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인간세상에 내려왔다는 신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것은 또 우리민족이 하늘의정통을 이어받은 민족임을 과시한다.
뗏목탐험 항해는 물론 우리만의착상은 아니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포르·헤이엘달」은 1947년 뗏목배몬티키호로 태평양을 건넜다.
그는 못하나, 한치의 쇠줄도 쓰지않고 콘티키식물로 만든 밧줄로 이은 뗏목을 타고 메루를 떠나 폴리네시아의 라로리아까지 1백1일의 항해를 했다.
그것은 남미 원주민이 뗏목을 이용해서 폴리네시아에 이주해 왔다는 학설을 증명한 것이었다.
그는 70년에 라그세호로 56일동안에 대서양 6천7천㎞를 항해해 바르바드스에 도착했다.
그항해는갈대배로아프리카대륙의사람들이미주에이주했다는 가설을 상당히 입증했다.
학술적 가치만이 아니다.뗏목 항해는 인간의 탐험심과 도전의 의지를 만족시켜준다.
최근엔 양자강을 뗏목으로 탐험하겠다고 나선 미국인들도 있다.아마존강에 도전한 한국인들도 있다.
역사를 생각하며 모험의 의미를 키우는 인간들에게서 순수한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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