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멀리서|「광복일념」외면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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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3월 내가 하와이에 들러 그곳 교포들로부터「독립공채」에 관한 전후 사정을 들었을 때 그순간 느낀 감정은 심한 부끄러움, 그리고 전율을 동반한 분노같은 것이었다.
어엿한 독립국가로서의 대한민국 정부가 배임을 하고 있다니, 그것은 국가적 위신이나 체면과 관련된 문제이기 전에 지극히 원초적인 양심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됐다.
당시의 교포들이 어떻게 번돈으로 독립공채를 쌌는데…나라를 잃고 이역만리의 땅에서 노예같은 생활을 하면서 피땀어린 품삯으로 하루에 번 50센트의 돈, 그돈을 모아 공채를 살때는 오직 조국의 독립을 희원하는 일념뿐이었을 텐데…그처럼 값지고 숭고했던 조상들의 정신이 이제 독립국가가 된 조국에 의해 무참하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사로운 사이에서도 할아버지가 진 빚을 자식이 갚지 못하면 손자라도 갚는 것이 이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도덕적 양심이다.
하물며 공채문에「대한민국의 명예와 신용으로 담보함」이라고 명기해 놓고, 그 독립정신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이나라 정부가『상환근거법이 없다』는 이유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격이 아닌가.
나는 귀국즉시 독립공채의 역사적 근거와 상환가능성 여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5개월여에 걸쳐 많은 관계전문가·정부당국자·의원동료들과 접촉했다.
그리고 미주지역 주요도시에 있는 한인회와도 끊임없는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이 과정에서 특별조치법의 입법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상환입법의 필요성은 대개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독립운동의 합법성 계승이다. 우리나라 건국헌법 전문은 물론 제헌국회의 개회사에서도 명확히 밝히고 있듯이 현 대한민국은 3·1독립운동의 합법성을 계승한 정부가 분명한 만큼 공채문제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그 정통성을 유지·발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애국심에 대한 보상이다.
독립공채가 사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상징인 동시에 조국광복의 원동력임이 분명할진대 이의 보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세째 정부의 공신력을 제고해야 한다. 앞에서도 예기했듯이 대한민국의 명예와 신용으로 담보한다고 해놓고 이를 상환하지 않는 것은 곧 국가공신력의 실추요, 특히 외국인 매입자에게는 신의없는 한국인상을 드러내는 결과가 될 것이다.
네째 대북괴 정통성의 확인이다.
우리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마치 김일성의 것인양 날조하고있는 북괴에 대해서는 일대 경종이 될 것이며,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정통성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다섯째 독립공채를 독립기념관에 전시할 경우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독립애국정신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교육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
나는 각계 인사와 접촉하고 문헌을 뒤적이면서 모르고 있던 사실도 많이 깨쳤고 느낀점도 많았다. 특히「국가원호법」을 포함한 우리나라 어느 법전에서도「임시정부」라는 법률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또 3·l운동이후 건국까지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가 매우 빈약하고 부분적으로 있는 것도 제대로 정립이 돼있지 않았다.
아울러 유감스러운 일은 독립운동의 사실들이 미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대목에서 일부 관계인들 또는 역사가들간에 서로 헐뜯는 풍조가 잔존해 있다는 것이다.
2차대전후 독일인들이 나치독일의 유대인학살을 속죄하는 뜻에서 서베를린에 유대교회를 건립하고 정신적으로 부채를 갚으려하고 있다거나 아일랜드인들이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모금했던 자금을 독립후에 다시 국민들에게 되돌려준 사실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호놀룰루에 있는 인터내셔널컨트리클럽이 제15홀에「닥터·승만·리」를 표기, 그분의 위대한 독립정신과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것은 독립공채 상환문제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상환입법을 추진·발의하는 과정에서 관련보도를 보고 자신의 사재로 상환해주겠다고 나선 독지가도 있어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이 법률안이 11대 국회구성이후 처음으로 여야공동발의의 케이스가 됐다는 점에서도 나는 의의를 부여하고 싶고 특히 서른여덟돌 광복의 달을 맞아 독립공채상환을 위한 법률안을 제출하게돼 더욱 큰 보람을 느끼고있다.
하와이에서 발행됐던 25만달러와 상해에서 발행됐던 4천만원규모의 공채에 대한 상환금액이 지난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대일청구권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도 못내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광(국회의원·국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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